[칼럼] 나쁜 것들에게 끌리는 이유
[칼럼] 나쁜 것들에게 끌리는 이유
  • 홍연주 기자
  • 승인 2022.07.19 23:0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기생충’에 이어서 3년만에 ‘범죄도시2’가 천만 관객수를 돌파했다. 범죄도시2가 흥행할 수 있었던 것에는 배우들의 열연과 더불어, 자극적인 스토리를 선호하는 대중 문화가 영향을 주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오징어게임’, ‘타인은 지옥이다’, ‘지금 우리 학교는’ 등 OTT 플랫폼의 간판에 걸려있는 영화나 드라마들은 대부분 살인, 강간 등의 강력 범죄를 소재로 하고 있다. 영화나 드라마의 가장 주된 소비자인 청년 세대에게 인기있는 작품들은 피 튀기는 짜릿함이다. 또한, ‘7번방의 선물’과 같은 사회를 풍자하는 작품보다는 범죄도시2에서 보여주는 덜 나쁜 주인공이 더 나쁜 악당을 잡는 안티 히어로적 권선징악의 스토리가 유행의 주류를 차지하고 있다. 이러한 수요의 편향으로 인해 더 이상 서정적이거나 사회에 대한 비판 의식을 가진 작품들을 영화나 드라마 플랫폼의 메인 간판에서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동시에, 선정적이고 폭력이 난무하는 작품을 만드는 게 흥행 공식처럼 굳어졌다. 이제는 사랑을 주제로 한 휴머니즘적 작품들에도 살인, 강간 또는 불륜, 성매매와 같은 비도덕적 요소가 가미되기 시작하고 있다. 최근 유행한 ‘동백 꽃 필 무렵’이나 ‘나의 해방일지’는 이 같은 현상을 보여준다.

 

자극적인 소재로 쾌감을 느낄 수는 있겠지만, 이런 소재의 유행은 우리 사회를 그대로 반영한 결과로, 마냥 무비판적으로 바라볼 수는 없다. 가족 영화가 기생충이나 범죄도시2와 같은 어두운 작품들이 아닌, ‘해운대’처럼 고난 속에서도 사랑을 느낄 수 있는 작품 등 예전 영화들에서는 강력 범죄를 다룬 작품들은 오락물로서 소비되지 않았다. 그 시절 범죄물들은 사회 비판을 목적으로 했다. 그러나 현재의 범죄물들은 권선징악으로 쾌락만을 주고자 하는 목적에 그치는 경향이 있다. 한 방송 관계자는 “강력 범죄들이 이전보다 많이 발생하면서, 예전에 비해 대중이 강력 사건들에 대해 느끼는 현실감의 간극이 좁아졌다"고 말했다. 덧붙여, 그는 이런 사회상 때문에 대중이 자극적인 것들에 무뎌지고 더 자극적인 것들을 찾게 되는 것 같다고 의견을 밝혔다.

 

대중이 더 자극적인 것을 찾게 되는 것에 영화와 드라마 업계도 일조하고 있다. 업계가 작품의 자극성을 통해 손쉽게 흥행하고자 범죄를 포르노적으로 소비한다. 이런 경향은 선정성에 열광하는 대중을 만든다. 대중문화평론가 김선영 씨와 위근우 씨는 ‘양자물리학’, 범죄도시 시리즈, ‘추격자’ 등의 사례를 통해서 흥행 작품들이 대부분 포르노적으로 범죄를 소비하고 있음을 지적했다. 불필요한 강간, 살인 장면을 넣고, 범죄의 끔찍함을 느끼도록 하기 보다는 범죄 과정에 대한 궁금증을 유발하는 구도로 촬영함으로써 시청자들의 말초신경을 극도로 자극하는 것이다.

 

범죄도시 시리즈의 감독은 “악역의 과거를 조명하지 않음으로써 정당성을 부여하지 않으려 노력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범죄 소재를 사용하는 데에는 더 큰 노력이 필요하다. 결국 대중은 범죄도시 시리즈의 악당인 ‘장첸’이나 ‘강해상’에게 카리스마를 느꼈다. SNS 커뮤니티에서는 악당들의 잔인함을 비판하기 보다는 둘 중 누가 더 강하고 남자다운지에 대한 열띤 토론의 장이 열리기도 했다.

 

대중문화평론가 김선영 씨와 위근우 씨는 문화산업계가 잔인성에 대한 신중한 접근 방식을 모색하고 대중에게 비판 의식을 주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믿을 수 없는 이야기’가 좋은 선례이다. 믿을 수 없는 이야기는 강간을 소재로 하지만, 피해자들의 고통에 초점을 맞춘 대화를 통해 강간을 암시적으로 드러낸다. 그로써 시청자들이 강간이란 사건이 아닌, 피해자들의 고통에 집중하도록 만들어 애환과 연대의 감정을 자아낸다. 믿을 수 없는 이야기의 신중한 접근 방식은 범죄를 주제로 한 작품도 잔인함과 선정성 없이, 비판 의식을 만들어낼 수 있음을 시사한다. 현재 문화산업계에는 이런 신중한 태도가 필요하다.

 

우리 사회에서 휴머니즘적 요소는 점차 고갈되어가고 있다. 폭력과 범죄에 열광하는 대중이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란 불가능하다. 우리 사회가 건강한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이전과 같은 애환, 연대, 공감이란 감정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 대중문화의 방향성을 결정하는 문화산업계가 비판 의식을 되찾고, 작품을 통해 의미 있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애쓰는 태도를 회복해야 할 필요가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