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멘틱 에러’의 성공과 성소수자 소비
‘시멘틱 에러’의 성공과 성소수자 소비
  • 홍연주 기자
  • 승인 2022.07.27 09: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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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올 상반기 BL* 웹드라마 ‘시멘틱 에러’가 성공을 거둔 후, 드라마•영화•예능을 가리지 않고 성소수자를 중심으로 하는 콘텐츠들이 꾸준히 나오고 있다. 현재 세간의 관심을 모으고 있는 작품들인 ‘블루밍’, ‘남의연애’도 성소수자의 로맨스를 다룬다.

*BL: 'Boys Love'의 줄임말로, 남성과 남성의 사랑 이야기를 다룬 일종의 장르

 

창작의 세계에서 성소수자는 주로 성인용 사이트의 웹툰과 웹소설에서 만나볼 수 있다. 이 중 대다수가 BL 장르로, 비현실적인 ‘영앤리치핸섬’** 남자 주인공들의 사랑 이야기를 그린 판타지 같은 전개가 특징이다. 이 이야기 속에서 성소수자인 등장인물은 독자의 욕망을 채워주는 도구로 사용될 뿐, 성소수자의 현실을 조명하는 어떠한 의미도 담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그러나 최근 성소수자를 다룬 영화, 드라마, 예능은 우리 사회의 성소수자를 현실적으로 조명하기 시작했다. 더욱이, 성소수자의 아픔만을 다루던 것에서 벗어나, 그들이 평범하게 연애하고 생활하는 모습을 담아 편견을 해소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영앤리치핸섬: 젊고 잘생긴 돈 많은 완벽한 사람을 일컫는 말.

 

올 하반기에는 ‘따라바람’, ‘본아페티’, ‘신입사원’, ‘오 나의 어시님’, ‘트랙터는 사랑을 싣고’, ‘해피메리엔딩’ 등 동성애를 소재로 한 드라마들이 공개될 예정이다. 이를 보았을 때, 성소수자라는 소재가 한 순간의 관심에서 끝나지 않고, 익숙한 방송 소재로서 자리매김할 것으로 보인다. 미디어가 다양성을 표방하는 현상은 ‘틀림’이 아닌, ‘다름’을 받아들이는 건강한 사회를 창출한다. 하지만, 정덕현 평론가는 이러한 현상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그는 “방송이 해당 소재에서 끌어낼 수 있는 자극성과 선정성을 부각했는지 명확하게 구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부 방송들이 성소수자의 삶을 드러낸다는 명분 하에 자극성과 선정성을 넣어 막장 드라마 보듯 성소수자들을 소비하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동성 간의 로맨스 리얼리티 예능인 ‘남의연애’는 거센 비판에 휩싸였다. 남의연애의 출연 제의를 받았던 한 누리꾼은 자신의 SNS 계정을 통하여 해당 드라마의 문제점에 대해 폭로했다. 해당 예능의 제작진은 “프로그램이 시사하는 사회적 의미에 대해 중점을 두어달라”고 말했다. 그러나 제작진들 중 단 한 명도 성소수자가 없었던 것과, “아무래도 당사자들만큼 (성소수자의 상황에 대해) 완벽하게 이해하기 어렵다”란 제작진의 경솔한 말은 프로그램의 취지에 대한 의심이 들도록 만들었다. 프로그램을 폭로한 누리꾼은 “성소수자에 대한 이해도가 심각하게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밝혔다. 더불어 그는 남의연애가 성소수자의 특성을 시청률을 위해 이용한다고 느꼈으며, 성소수자에게 어떠한 순기능도 가져다주지 못하는 것 같다고 끝맺었다.

 

성소수자 콘텐츠가 배역으로 주로 아이돌을 섭외하는 경향도 비판받고 있다. 한 아이돌 엔터테인먼트 방송 관계자는 최근 유명 남자 아이돌에게 BL 작품 섭외 요청이 급증하고 있다고 밝혔다. 성소수자만이 성소수자 등장인물을 연기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미 명성을 가지고 있는 연예인들을 내세운 작품들은 성소수자의 연애를 시청률을 끌어들이는 도구나 판타지적 욕망을 충족해주는 도구로서 소비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현재 방송계는 남성 간의 로맨스에만 주목한다. 여성 간의 사랑, 트렌스젠더 등의 다른 성소수자 집단은 여전히 미디어에서 찾아볼 수 없다. 이런 현상의 원인도 방송계가 소수자성을 수지타산에 맞게 이용하기 때문이다. 한 방송 관계자는 “OTT 간 콘텐츠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일정한 소비자 집단이 존재하여 수익성을 낼 수 있으면서도 경쟁력 있는 성소수자 콘텐츠를 겨냥하고 있다”고 전달했다.

 

이렇듯 소수자성에 대한 배려가 결여된 채 그들을 소재로 콘텐츠를 제작하는 것은 성소수자의 연애를 현실이 아닌 ‘판타지’로서 생각하게 만들어 편견을 강화시키거나, 성소수자 자체에 대한 새로운 고정관념을 형성할 수 있다. 남의연애에 대해 폭로한 누리꾼은 “이미지로써 퀴어 소비는 더 늘었지만, 인권과 가치로써의 퀴어 소비는 예전만큼이 아닌 것 같다”며 안타까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김지학 한국다양성연구소장은 “기획자들이 연출자들의 인권이나 성평등에 관한 인식에 대해 계속 주의 깊게 바라보아야 한다. 연출자와 시청자 역량이 둘 다 함양되는 작품을 만들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견해를 밝혔다. 성인용 판타지로 소비되던 소수자성이 미디어에 노출되면서는 수지타산에 맞게 이용되는 현실은 우리 사회가 소수자에 대해 취하고 있는 태도를 반성하도록 만든다. 이런 콘텐츠들이 주는 색다름과 선정성에만 취하기보다 비판적 의식을 가지고, 소수자성 소비 실태를 들여다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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