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칼럼] 임신중절권 폐기, 누구를 위한 판결인가
[기자칼럼] 임신중절권 폐기, 누구를 위한 판결인가
  • 최수민 기자
  • 승인 2022.09.06 12: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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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지난 6월 24일, 미국 연방 대법원이 ‘로 대 웨이드 사건’ 판례를 50여년 만에 뒤집으면서 미국 사회에 큰 파장이 일었다. 반세기 동안 여성의 임신중절권을 보장하던 이 판례가 하루아침에 뒤집힐 수 있었던 까닭은 무엇일까.

 

로 대 웨이드 판결이란 1973년 미 연방 대법원이 헌법에 규정된 사생활의 권리에 임신중절권이 포함된다는 결정을 내린 판례를 말한다. 이 판례는 올해 6월 24일, 미 연방 대법원이 임신 15주 이후의 임신중절을 금지한 미시시피주 법안에 대해 합헌 판결을 내리면서 폐기되었다. 통칭 ‘돕스 대 잭슨 판결’이라 불리는 최근 판례로, 임신중절 허용 여부를 각 주의 법으로 결정할 수 있게 되었다. 구트마허 연구소는 해당 판결로 26개 주가 임신중절을 금지할 것이라 예상했다. 미주리주, 루이지애나주는 로 대 웨이드 판결 폐기 직후 임신중절을 불법으로 보는 법을 시행했다.

 

낙태죄는 약자를 궁지로 내몬다. 임신중절을 금지한다고 해서 이 행위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김정혜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논문 ’낙태죄 폐지를 말하는 이유’에 따르면, 법적 규제의 정도와 인공임신중절률은 상관관계가 없다고 밝힌다. 다른 한편, 임신중단의 법적 제한과 모성사망률의 연관성은 뚜렷하다는 증거를 제시하고 있다. 이는 로 대 웨이드 판결 이전에 행해진 낙태 방법을 보면 알 수 있다. 부유한 여성들은 다른 지역에 가거나 주치의를 고용하는 등 비교적 안전한 방법으로 임신중절 수술을 받았지만, 형편이 좋지 않은 여성들은 위험한 수술을 거행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불법 낙태 수술을 하거나 직접 낙태를 시도하다 사망한 여성의 수도 적지 않았다. 낙태죄 시행이 임신중절 행위를 감소시킨 것이 아니라 불법 낙태 행위를 증가시킨 것이다. 비위생적인 불법 낙태 시술은 당연하게도 모성사망률 증가로 이어졌다. 게다가 낙태 합법화가 낙태를 무조건적으로 증가시키는 것도 아니다. 캐나다의 경우, 인공임신중절 비범죄화 이후 임신인공중절률이 오히려 감소했다. 임신중단에 대한 규제가 없는 네덜란드도 다른 나라보다 낮은 인공임신중절률을 보인다. 낙태죄는 태아의 생명 보호를 명목으로 유지되어 왔지만, 그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다. 따라서 임신중절에 대한 권리는 여성의 건강 보호에 초점을 맞추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마땅하다.

 

세상에는 수많은 낙태갈등 상황이 존재한다. 다양한 사회적, 경제적, 신체적, 심리적 요소가 여성의 임신과 출산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이러한 요소들을 몇 가지 조건으로 압축하여 임신중절을 제한한다면,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하게 될 수도 있다. 임신이 여성의 삶에 있어 매우 중대한 사건인 만큼, 여성의 결정권이 우선적으로 보장돼야 한다. 지난 2019년 한국 현법재판소가 발표한 판결문을 보아도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하고 보장하는 요지에서 낙태죄의 헌법 불합치 결정이 내려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임신중절수술이 체계적인 의료 서비스를 갖추어 합법적으로, 안전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임신중절권이 쉬지 않고 찬반 논쟁에 휩쓸리는 것은 이를 여성의 결정권과 태아의 생명권의 대립 구도로 이해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임신중절권은 이러한 대립을 넘어서 여성의 건강권, 자기결정권, 재생산권과 관련한 인권 차원의 문제로 봐야 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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