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솟는 환율과 위태로운 가계 경제
치솟는 환율과 위태로운 가계 경제
  • 황성진 기자
  • 승인 2022.09.26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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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미국 현지 시각 13일 오전 9시경, 미국 고용통계국은 전년 동월 대비 8월 소비자물가지수(CPI)가 8.3% 상승했다고 밝혔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하 미 연준)의 잇따른 큰 폭의 금리 인상으로 인해 8.1% 수준의 CPI 상승을 예상하던 미국 금융시장에는 비상등이 울렸다. 이날 나스닥은 시가 대비 종가가 약 2.4% 하락한 채로 장을 마감했다.

 

지난 8월 26일 잭슨홀 미팅*에서 미 연준 의장 파월의 연설로 촉발된 금융시장의 하락이 미처 다 회복되지 못한 상황에서, CPI 상회라는 악재로 인해 전 세계 금융시장은 다시 하락장을 맞이했다. 파월 의장의 잭슨홀 연설에서도 드러났듯 금융시장은 금융 당국의 통화 정책 방향성보다 시장의 기대감에 더 큰 영향을 받는 시장이다. 현재 가치보다 미래 가치를 더 많이 반영하는 금융시장은 실물경제와 반대로 움직일 수도 있다. 양적긴축의 언급만으로도 충격을 받던 금융시장은 점점 내성을 가지면서 기준금리의 75bp(1bp=0.01%포인트) 인상 전망에도 크게 동요하지 않게 됐다. 투기성 자본흐름으로 과열된 금융시장은 실물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

* 잭슨홀 미팅 : 미국 연방은행인 캔자스시티 연방은행이 매년 8월 주요국 중앙은행 총재 및 경제전문가들과 함께 와이오밍주의 휴양지인 잭슨홀에서 개최하는 경제정책 심포지엄

 

미 연준의 더욱 큰 규모의 기준금리 인상이 예상되는 가운데, 국내 금리와 미국 금리 사이의 괴리로 인한 자본 이동으로 15일 원/달러 환율은 1,400원을 돌파했다. 외환 당국은 환율의 연착륙**을 위해 원-달러 거래량이 줄어드는 점심시간을 틈타 7억 달러 이상의 외환 매도와 추경호 경제부총리의 구두 개입을 시행했다. 이러한 방식의 통화 정책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자주 사용되던 것으로, 소위 ‘도시락 폭탄’이라 일컫기도 한다.

** 연착륙(Soft Landing) : 갑작스러운 지수의 변동이 경제에 주는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그 기간을 지연시켜 부드럽게 변동할 수 있도록 하는 일

 

문재인 정부의 코로나19 확장 재정과 실패한 부동산 정책으로 인한 통화량 증가로 한국부동산원 부동산통계정보 시스템에 따르면 부동산 가격은 지난 5월까지 약 2년 6개월간 꾸준히 상승했다. 한때는 부동산 투기 열기 과잉과 내 집 마련 불가에 대한 공포가 겹치며 대출을 받아 자가 주택을 마련하는 소위 ‘영끌족’이 경제 신문을 도배하기도 했다. 결국, 코로나19로 인한 가계소득 악화와 레버리지 투자***로 인해 올해 2분기 가계부채가 1,869조를 돌파했다. 이는 GDP의 104.3%로 주요 선진국 중 가장 높은 수준이다. 이에 보태어, 김세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간접부채인 가계신용에 직접부채인 전세 보증금과 준전세 보증금을 보수적으로 추산한 값을 합하면 GDP의 130%에 달하는 매우 위험한 수준의 가계부채가 존재하는 셈이라고 의견을 밝혔다.

*** 레버리지 투자 : 대출을 이용한 투자. 자본에 비해 큰 수익을 낼 수 있으나, 반대로 큰 손해를 볼 수도 있는 투자 방법

 

가계 부채액이 쌓여있는 상태에서 한국은행은 섣불리 기준금리 인상을 단행할 수 없다. 가계 부채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주택담보대출의 75%가 금리 인상의 영향을 받는 변동금리이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은 기준금리를 25bp씩 인상하다 지난 7월에는 50bp를 인상하는 큰 수를 두었지만 미 연준의 금리 인상을 따라가기에는 여전히 역부족이다. 양적긴축 이전의 국내 기준금리는 미국보다 약간 높은 수준을 유지하면서, 국외 자본의 국내 투자를 촉진하고 국내 금융 시장을 활성화시키는 역할을 했다. 그러나 미국의 기준금리보다 국내 기준금리가 낮아지면서, 국외 자본은 국내 금융 시장을 이탈하여 국내 시장을 침체시킴과 동시에 환율을 올리고 있다.

 

환율이 오르면 수출입에도 복합적인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어, 국내에서 생산한 제품 1단위의 가격이 1,000원이면 원/달러 환율이 1,000원일 때 1달러에 물건을 수출해야 제 가격을 받는 셈이다. 그러나, 환율이 1,250원일 때에는 0.8달러에 물건을 수출해도 제 가격을 받는 셈이 된다. 이처럼 환율이 상승하면 총 수출액이 증가한다. 반대로 수입 시에는 더욱 비싼 가격을 주고 사야 하기 때문에 총 수입액은 감소한다.

 

이러한 효과들이 맞물려 환율이 증가하는 시기에는 경상수지가 으레 흑자가 나기 마련이다. 그러나 에너지 원자재인 석유·석탄의 국제 가격 상승과 환율 상승으로 인해 올해 7월 경상수지는 지난해 7월과 대비해 66억 2천만 달러 감소했다. 에너지 원자재 가격 상승의 원인에는 미국의 원유 재고 감소와 산유국의 더딘 증산 협상이 있었다. 또한, 러-우 전쟁의 장기화와 함께 러시아가 유럽으로의 에너지 수출을 감축한 것도 영향을 줬다.

 

환율 상승으로 인해 국내 소비자 물가가 폭등의 조짐을 보이는 가운데, 엄청난 수준의 가계 부채로 기준금리 인상 역시 쉽지 않아 국내경제는 진퇴양난의 상황이다. 한국은행은 설립법에 따라 물가안정을 목적으로 하는 기관이기 때문에 국민경제 침체를 감수하고서라도 기준금리 인상을 통한 물가안정을 택할 가능성이 높다. 기준금리 인상의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윤석열 정부는 국민부채 탕감 정책 등을 발표했으나, 이에 대한 국민의 여론은 싸늘하기만 하다. 윤석열 정부가 차선책으로 어떠한 재정정책을 내놓을지에 따라 국민경제의 방향이 결정되는 만큼 이후의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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