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중립성의 오류
[칼럼] 중립성의 오류
  • 민윤재 기자
  • 승인 2022.10.30 20:35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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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요즈음 인터넷 커뮤니티와 댓글에서는 “중립 기어 박아요”라는 말이 자주 쓰인다. ‘중립 기어’는 자동차 기어 조작 상태에 빗대어진 말로 어떤 사건에 대해 섣불리 입장을 취하지 않고 관망하겠다는 의미다. 하지만, 대중과 언론은 사실관계가 명확한 사안에도 중립성이라는 잣대를 들이밀고, 이성적 판단을 가장한 편향적 태도를 보인다. 과연, 우리가 말하는 ‘중립’은 진정한 ‘중립’인가?

 

대중은 정말 ‘중립’을 지키고 있는가?

‘중립 기어’는 미투 운동이 일어난 시점부터 활발하게 사용됐다. 처음 언론에 보도된 미투 운동, 유명인 학교폭력 등의 논란에 대한 사실관계가 뒤바뀌는 일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이후 중립 기어는 하나의 인터넷 문화로 자리 잡았다. 어떤 사건이 일어나던 “정확한 결과가 나올 때까진 중립 기어 박자”는 물타기식 여론이 등장했다. 이처럼 중립은 부적절한 상황에서도 계속해서 남용되고 있다.

 

특정 입장을 지지하는 태도가 아닌 중립을 지키는 태도는 긍정적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중립 기어를 박는다”라는 말 자체에는 대중들이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진실만 보려 한다는 편향적 태도가 숨겨져 있다. 밝혀지지 않은 사실을 명분 삼아 밝혀진 사실을 외면하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자신의 판단과 반대되는 사실에 대한 회피를 나타낸다. 중립적 태도는 사실관계를 파악하기 위한 적극성을 결여시킨다. 대중들에게는 앞서 지적한 문제들이 편안함으로 다가온다. 자신이 한 말에 책임을 질 필요도 없고, 자신의 견해를 내보임으로써 누군가에게 공격당할 위험을 감수하지 않아도 된다. 이러한 중립적 태도를 취하는 대중들의 심리는 중립 기어의 남용으로 이어진다. 판단을 미루는 게 항상 공정한 것은 아니다.

 

조건 없는 중립 기어는 오히려 혼란만 가중시키고 있다. 중립 기어는 더 이상 객관적인 사실 판단을 위한 역할을 한다고 보기 어렵다. 이제는 사건에 대한 활발한 사회적 논의가 이뤄져야 할 때다.

 

언론도 ‘중립 기어’를 박아야 할까?

중립 기어는 비단 대중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언론 또한 오래전부터 ‘기계적 중립’을 지켜오고 있다. ‘기계적 중립’이란 편이 갈리는 사안에 대해 어떤 태도가 진정한 중립인지 따지지 않고 획일적으로 중립만을 고집하는 자세를 뜻한다. 언뜻 보면 언론이 중립적 태도를 견지하는 건 당연해 보인다. 언론의 기계적 중립에는 어떤 문제가 있을까?

 

책 ‘포스트 트루스’에서는 미국 언론의 잘못된 중립으로 인한 탈진실 현상을 다룬다. ‘탈진실’은 옥스퍼드 사전에서 지정한 2016년 올해의 단어로, 진실보다 감정에 호소하는 것이 대중에게 호소력 있게 다가가는 현상을 의미한다. 해당 책은 과거 언론이 탈진실에 동조하면서 일어난 사건들을 조명한다. 1990년대, 전통적인 뉴스 프로그램들은 ‘공정하고 균형 잡힌 보도’를 무기로 내세웠다. 어떤 논점을 다루더라도 양쪽 입장을 모두 보도하기 시작한 것이다. 사실문제를 전달할 때조차 모든 입장에 ‘균등한 시간’을 배정하는 양상이 나타났다.

 

책에서는 기후 변화 문제를 예시로 들고 있다. 전 세계 기후학자들은 인간의 활동이 기후 변화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그러나 기후 변화 문제 뒤에는 기업의 매출이라는 거대한 금전적 이해관계가 있었고, 석유 회사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결과를 도출해 줄 연구를 지원하기 시작했다. 미국 언론은 ‘중립성’에 대한 강박을 이겨내지 못하고 인간 활동과 기후 변화의 상관관계에 대해 과학자와 회의론자 간의 토론을 진행했다. 인간의 활동이 기후 변화와 명백하게 관련이 있다는 것이 증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해당 토론에서는 기후 변화를 ‘정확히 밝혀진 사실이 없고 해결되지 않은 문제’라고 결론지었다. 이는 결국 대중들이 기후 변화에 대한 경각심을 잃게 만드는 계기로 작용했다. 언론의 잘못된 중립성이 결국 대중들에게 혼란을 야기하게 된 것이다. 이렇듯 언론의 객관성 집착은 종종 비합리적인 결과를 낳기도 한다.

 

미국 언론학계는 50 대 50의 기계적 중립 보도를 통해 객관적인 ’척’하는 언론의 행태를 ‘거짓 등가성’이라는 말로 설명한다. 기계적 중립은 객관적으로 보이지만 사실 객관적이지 않다는 의미다. 언론의 기계적 중립은 지금도 진행되고 있는 문제다. 특히, 선거와 같은 정치적 이슈에 자주 이용된다. 문제는 언론이 행하는 기계적 중립은 잘못된 여론을 형성하고 대중들을 혼란스럽게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중립을 지키는 언론이 곧 객관적인 사실을 보도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 중립성이 반드시 객관성으로 이어지진 않는다. 언론은 자신들이 가진 힘에 대한 책임을 통감하고 'fact' 그 자체에 집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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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 2022-11-07 07:55:36
동의합니다. 가끔은 중립 자체가 폭력적일 수 있죠.

. 2022-11-01 22:59:39
맞는 말입니다. 공감하고 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