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인문학, 얼마나 심각하길래?
위기의 인문학, 얼마나 심각하길래?
  • 김세은 수습기자
  • 승인 2022.11.04 09:57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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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기 '나를 채우는 인문학' 표지
최진기 '나를 채우는 인문학' 표지

“인문학은 전공으로 삼는 거 아니야.” 인터넷 댓글과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자주 보이는 말이다. 인문계가 이공계보다 취업률이 떨어지는 현대 사회에서 인문학 경시 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어떻게 보면 자연스러운 현상일지도 모른다.

 

통계청이 발표한 ‘고등교육기관 졸업자 취업통계‘에 따르면 인문계열 취업률은 2008년 68.8%였으나, 2020년에는 53.3%로 감소하는 추세다. 이는 2020년도 전체 취업률이 65.1%인 것에 비해 현저히 낮은 수치다. 그러나 공학계열 취업률은 2020년 67.7%를 기록하며 의약 계열 다음으로 높은 취업률을 자랑했다.

 

이러한 취업률의 하락은 나비 효과로 이어진다. 취업 시장에서 인문계열의 경쟁력이 없어지자 각 대학교가 인문계열 학과를 폐과 또는 통폐합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도종환 의원이 제출한 ‘교육부 일반대학 학과 통폐합 현황'에 따르면, 지난 3년간 각 계열의 통폐합 건수는 인문 사회계열 248건, 공학계열 190건이다. 특히 인문사회계열의 통폐합은 2019년 47건에서 2021년 146건으로 눈에 띄게 증가했다. 이에 따라 인문 사회계열 전임교원의 논문 실적 역시 꾸준히 감소하고 있다. 공학 계열 역시 190건의 통폐합 기록이 있지만, 이에 못지 않게 신설학과가 생기는 추세다. 가톨릭대학교 역시 올해 데이터사이언스학과가 신설됐고, 내년에는 바이오메디컬소프트웨어학과가 개설될 예정이다.

 

인문학이 경시되는 사회적 원인은 기술만능주의와 환금만능주의로 인한 과학주의 사상 확산에 있다. 산업화 이후 사람들의 가치관은 크게 변화했다. 즉시 화폐로 환급되지 않는 것은 아무 가치가 없다고 판단하고 오직 기술과 물질만이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한다는 ‘기술만능주의’ 사상이 나타났다. 한국은 단기간에 급격한 산업화와 근대화를 겪었고, 이러한 풍조는 사람들의 가치관에 더욱 깊게 자리 잡았다. 물질과 기술을 얻기 위해 과학이 중시되며 이공계 학문이 주목받기 시작했고, 동시에 문과 학문의 경쟁력은 감소했다. 취업이나 실생활에 도움이 되지 않는 인문사회계열 학문의 가치가 급속도로 떨어진 것이다. 그중에서도 흔히 문사철이라고 불리는 문학, 사학, 철학은 전공자에게는 자조의 대상으로, 타 전공자에게는 비하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성균관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천정환 교수는 인문학이 위기에 처한 원인으로 ‘지식의 환금성‘을 꼽았다. 천정환 교수는 “사회가 과학기술 중심의 사회로 빠르게 변화하고, 자본주의가 발전하는 상황 속에서 돈으로 바꿀 수 있는 지식만이 중시되고 있는 것이 가장 큰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차원의 노력이 필요하다. 교육부는 인문사회계열의 축소를 막기 위해 다른 실용 학문과 융복합하는 등의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방송사 역시 인문학과 관련한 대중적인 시사 교양 프로그램 등을 편성하여 인문학이 막연히 어렵고 지루하다는 생각을 탈피하고 관련 서적이나 강연을 많이 접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김창옥 교수의 <김창옥 쇼>, 설민석 강사의 <요즘 책방: 책 읽어드립니다>와 같은 시사 교양 프로그램으로 인문학에 대한 관심을 고취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진입 장벽이 낮은 책을 읽어 생각하는 힘을 기를 수도 있으니 금상첨화다.

 

양적 가치를 추구하는 현대인들은 정신적 빈곤 속에서 방황하며 살아간다. 물질적 풍요만을 강조하는 사회에서 인간은 인생무상, 허무주의에 빠지기도 한다. 인문학 기피 현상은 4차산업혁명 시대에서 피할 수 없는 하나의 흐름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러한 흐름에도 많은 이들은 인문학의 중요성을 이야기하고 있다. 더 나은 삶, 즉 웰빙(well-being)을 위해 인문학을 배우고 정신적인 가치에 집중해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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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은 2022-11-05 02:38:39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인간이 인간일 수 있는 이유가 바로 깊은 사색이 가능하다는 점인데도 불구하고 인문학이 자조의 대상이 된다는 현실이 참 슬퍼요 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