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품위 있는 죽음을 맞이할 권리가 있다
우리는 품위 있는 죽음을 맞이할 권리가 있다
  • 강미주 수습기자
  • 승인 2022.11.06 22: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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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명의료결정제도, 환자의 의사 존중을 위한 노력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연명의료결정법은 1997년 ‘보라매병원 사건’과 2009년 '김 할머니 사건’으로 임종과 관련한 소송이 진행된 것이 계기가 됐다. ‘김 할머니 사건’에서 대법원은 의학적으로 회생 가능성이 없는 환자라면 해당 환자가 남긴 사전 의료지시나 환자 가족이 진술하는 환자의 의사에 따라 연명치료를 중단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판결했다. 이로써 의료계는 연명의료 중단의 필요성을 인식했으나, 연명의료 중단이 제도화되지 않아 소극적인 태도를 유지해왔다.

 

연명의료결정제도는 2018년 시행된 『호스피스ㆍ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에 따라 정식으로 제도화됐다. 이는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와 연명의료 중단 등의 결정을 통해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보호하는 제도다. 모든 환자는 최선의 치료를 받으며, 자신이 앓고 있는 질병의 예후 및 향후 본인에게 시행될 의료행위에 대하여 분명히 알고 이에 대한 자기 결정권을 행사할 권리를 가진다.

 

환자 연명의료 의사 확인은 세 가지 방법을 통해 이뤄진다. 먼저 연명의료계획서, 사전연명의료의향서로 확인할 수 있다. 만약 이 두 가지 모두 확인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환자 가족 2인 이상의 일치하는 진술로 확인한다. 즉, 연명의료 중단 결정에서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품위 있는 죽음을 맞이하기 위한 문서이며 무의미한 생명 연장보다 개인의 존엄과 삶과 죽음을 결정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한다.

 

하지만 연명의료 중단 결정 과정에서 가족을 통해 의사를 확인할 수 있는 조항이 있어 개인의 의사보다 가족을 통해서 의사결정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더 많다. 2019년 12월 기준 총 80,003건의 연명의료 중단 및 유보가 이행되었는데 그중 1.7%만 본인이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통해 연명의료를 중단하거나 유보했다. 가족의 합의나 진술을 통해 연명의료를 중단한 환자는 32.2%로, 아직도 환자의 의향보다 가족이나 의료진을 중심으로 의사결정이 이루어지고 있다. 따라서 환자의 예후에 대한 의사를 충분히 존중했다고 할 수 있는 사례는 적은 실정이다.

 

국내에서 연명의료결정법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대리인 지정제도 도입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전통적인 가족구조가 해체되면서 1인 가구가 급증하고 있고, 연명의료에 관한 사항을 사전에 예상하여 결정해두는 데에는 어느 정도 정보의 제약이 있다. 가족의 의견에 따라 이행되면 가족 간 의견 불일치, 보호자의 경제적 문제로 인해 연명의료 대상자의 의사가 충분히 반영되기 어려울 수 있다. 이에 반해 지정대리인은 대리 판단 표준과 최선의 이익 표준에 근거하여 더욱 객관적인 접근이 가능해 환자를 위한 최선의 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진다.

 

캐나다에서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할 때, 환자가 의사결정에 어려움이 있는 경우 의료대리인이 상담 진행 후 결정 내용을 이행한다. 여기서 의료대리인이란 ▲환자가 지정한 의료대리인 ▲법원이 지명한 후견인 ▲동의능력위원회에서 지명한 가족 대리인, 지정된 대리인이 없는 경우 ▲배우자 ▲부모 또는 자녀 ▲형제자매 등의 순으로 자동 지정된다.

 

우리나라의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 대상자는 만 19세 이상 성인이다. 호주의 경우 의사결정능력 판단 기준에 근거하여 성인뿐만 아니라 18세 미만 미성년자도 연명의료 결정에 참여할 수 있다. 캐나다에서는 과반의 주에서 만 16세 이상을 성숙한 미성년자로 칭하며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을 허용한다. 이를 바탕으로 미성년자 시절부터 죽음에 대한 숙고가 적극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우리나라는 임종 직전의 환자와 죽음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을 꺼리는 경향이 있다. 이에 자신의 죽음에 대한 논의가 부족한 편이고 깊게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적다. 의료대리인 지정 제도를 법제화하여 환자의 의사를 충분히 피력하도록 해야 한다. 또한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법적인 효력을 가지는 환자의 마지막 의사표현이고 우리는 이를 존중해줄 필요가 있다. 환자 본인이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통해 자신의 의사를 적극적으로 밝힐 수 있도록 다양한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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