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인컬처]‘서울 1964년 겨울’, 그리고 2022년 겨울
[본인컬처]‘서울 1964년 겨울’, 그리고 2022년 겨울
  • 윤채현 기자
  • 승인 2022.11.23 08: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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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냄에듀 출판사 고등 '문학' 교과서에 나오는 소설 '서울, 1964년 겨울' 삽화
해냄에듀 출판사 고등 '문학' 교과서에 나오는 소설 '서울, 1964년 겨울' 삽화

2022년 트렌드 키워드로 ‘나노 사회’가 뽑혔다. 나노 사회는 공동체가 개개인으로 미세하게 분해된 사회를 말한다. 이는 현대사회가 각자도생하고 양극화된 단절의 사회임을 내포한다. 현대 사회에서 개인주의는 빼놓을 수 없는 문제가 됐다. 1960년대의 암울한 사회를 표현한 ‘서울, 1694년 겨울’을 통해 현대 한국 사회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김승옥의 단편소설 ‘서울, 1964년 겨울’은 현대 사회의 소외와 개인주의의 심화에 대해 생각해보도록 돕는다. 등장인물 ‘나’, 안, 사내 세 사람은 우연히 포장마차에서 만난 사이다. 사내는 장례 비용이 없어 아내의 시체를 팔고 돈을 받았다며, 같이 있어 줄 것을 제안한다. 의미 없는 대화를 주고받던 그들은 소방차를 발견하자 이끌리듯 따라가 구경한다. 불을 구경하던 사내는 돈을 불 속에 던져버린다. 이후 그들은 여관에 간다. 사내는 같은 방에서 자자고 제안하지만, 안의 거절로 셋은 각자 다른 방에서 투숙한다. 다음 날 아침 사내는 극단적 선택을 한 채 발견된다. 안은 ‘혹시 생길지 모르는 귀찮은 일을 피하기 위해’ 도망치자고 한다. 소설은 그들이 여관을 떠나며 마무리된다.

 

소설 속 거리는 ‘영화에서 본 식민지의 거리처럼 춥고 한산했고, 그러나 여전히 소주 광고는 부지런히, 약 광고는 게으름을 피우며 반짝이고’ 있다. 그런데도 그들은 갈 데가 없다. 현실에서 소외된 세 인물은 단순히 만나고 헤어질 뿐 사회적 연대감을 느끼지 못한다. 강원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의 ‘박태원과 김승옥 소설에 나타난 소외의 의미’에 따르면, 여관에 동행했던 남자의 죽음을 두고 모른 척 여관을 나서는 ‘나’와 안의 방관적 태도는 소외의 극점을 보여준다. 인간의 죽음은 ‘나’에게 어떤 의미도 주지 못한다. 그들에게서는 남자가 왜 죽었는지에 대한 인간적인 고민을 찾아볼 수 없다. 인간 소외 현상은 결국 인간관계의 단절이라는 사회적 현상을 유발한다.

 

1964년의 한국과 지금의 한국은 별다를 게 없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급증하는 1인 가구 현상은 개인의 사회적 고립 및 단절과 깊은 관련이 있다. 국가통계포털에서 제공하는 ‘1인 가구 비율’에 따르면 2021년 기준 1인 가구의 비율은 전체 가구 중 33.4%를 차지한다. 1인 가구 비율은 2010년부터 매년 오름세를 보이며 2020년 대비 1.7% 상승했다. 가구 수로 따지면 약 52만 가구가 증가한 것이다.

 

개인주의의 극단을 달리고 있는 현대 사회에서 사람들은 타인이 죽음의 위기에 처해 있어도 외면하는 경우가 많다. 올해 7월에 발생한 울산 초등학생 개 물림 사고에서는 지나가던 행인이 개에 물린 채 쓰러져 있는 아이를 목격했으나 그대로 지나쳐 논란이 되기도 했다. 개인주의의 팽배 속에서 개인들은 타인에 대한 공감이 결여된 채 살아간다. 이 과정에서 이기주의가 합리적 개인주의로 포장되기도 한다.

 

몇 년 전부터는 이러한 사회의 흐름에 맞춰 ‘착한 사마리아인 법’이 제안되고 있다. 착한 사마리아인 법은 위험에 처한 사람을 구조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위험에 빠지지 않을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구조를 불이행한 사람을 처벌하는 법이다. 착한 사마리아인 법이 한국 사회에서 논의되는 것도 어쩌면 나의 이익만을 추구하고 공감 능력이 결핍되어가는 사회 현상을 방증하는 것은 아닐까.

 

결국 ‘서울, 1964년 겨울’은 세 인물을 통해 의식의 방황과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무관심한 사람들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문학적, 사회적 가치를 지닌다. 파편화돼가는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을 기르고 사회에 유연하게 대처할 필요가 있다. ‘함께 사는 사회의 가능성’이 어떻게 모색되어야 할지는 앞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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