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요동치는 환율시장 – 파운드화 편
[기획] 요동치는 환율시장 – 파운드화 편
  • 김수연 기자
  • 승인 2022.11.23 08: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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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지지 않는 나라, 영국의 해는 떠 있을 수 있을까?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위상을 떨치던 영국의 경제가 휘청이고 있다. 오랜 기간 준(準)기축 통화로 대접받았던 파운드화는 왜 그 위상을 잃어가고 있을까? 대부분 리즈 트러스 전 총리의 감세정책으로 인해 파운드화가 몰락했다고 생각하지만, 이는 하나의 트리거였을 뿐이다. 영국 경제는 근본적인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었다.

 

먼저, 영국 경제는 브렉시트* 이후로 악화되었다. 영국은 1950년대부터 유럽공동체에 대해 회의적이었으며 1979년 마가렛 대처 총리가 정권을 잡은 뒤 EU(유럽연합)와의 갈등이 빈번해졌다. 2008년 남유럽 국가의 재정위기와 이로 인한 프랑스, 독일 등 주요 EU 회원국의 경기 침체로 영국이 내야 할 분담금 부담이 계속해서 증가했고, EU 탈퇴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2010년대 중반부터 시리아 등 난민 유입이 계속되자 탈퇴를 요구하는 움직임이 가속화됐다. 결국 영국은 2020년 1월 31일 브렉시트를 단행했다. 하지만 브렉시트 이후 6개월 동안 영국과 EU 간 교역이 1/3로 감소했다. EU 단일 시장에서 빠져나오면서 대규모 역내 시장을 잃게 된 것이다. 각종 수입품에 관세가 매겨지고 무역 차질로 공급 불안이 생기며 물가 상승 폭이 커지기 시작했다. 여기에 코로나19까지 겹치며 물가가 더 가파르게 오르게 된 것이다.

*브렉시트: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를 뜻하는 말

 

달러의 강세 또한 하나의 원인이 된다. 영국은 대외 부채가 자산보다 많은 순 채무국이다. 달러가 강세일 때 채무 부담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물가 상승을 해결하기 위해 영국 중앙은행이 금리를 올리고 있으나, 미국 연준의 금리 인상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영국은 2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0.2%로 지난 1분기보다 0.5% 하락해 금리 인상에 신중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4연속 자이언트 스텝을 밟는 동안 영국과 미국의 금리 격차가 증가했다.

 

트러스 전 총리는 지난 9월 23일 경제 침체 위기에 대응해 각종 감세 정책을 발표했다. 하지만 금리 상승기에 확대 재정 정책을 시행하면 향후 이자 상환 부담이 증가하고 정부 재정이 취약해질 수밖에 없다. 리즈 트러스 전 총리의 감세 정책 발표 이후 파운드화 가치는 역대 최저 수준인 1.07 달러까지 급락했다. 또, 장기 국채 금리가 연 4.5%까지 치솟았다. 이는 유럽의 ‘부채 과다국’인 그리스와 이탈리아보다도 높은 수치다. 국채 금리가 올라가면 채권 가격은 떨어지기 때문에, 시장이 영국을 그만큼 고위험으로 평가했다는 의미다. 엘리자베스 여왕의 서거 또한 영국의 불안정성을 증가시키는 계기가 됐다.

 

감세 정책으로 국채 가격이 폭락하자 BOE**는 금융시장 안정을 위해 20년물 이상 장기 국채를 10월 14일까지 매입했다. BOE의 시장 개입으로 전날 4.498%를 기록한 국채 금리는 긴급개입 이후 4.0%로 감소했다. 하지만 정부의 신뢰 문제가 제기된 데다 인플레이션에 대한 근본적 해결책이 제시되지 않아 시장 불안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금융 시장의 불안은 실물경제에 전이되기 시작해 영국 HSBC와 로이드뱅킹그룹 등 대형 금융기관은 주택담보대출을 전격 중단했다.

**BOE: 영란은행, 영국의 중앙은행

 

파운드화의 약세가 지속되는 가운데 10월 20일, 트러스 전 총리가 사임 의사를 밝히자 파운드화 가치와 채권 가격이 동반 상승했다. 급진적인 감세 정책을 내걸었던 트러스 전 총리가 물러나며 재정이 안정될 것이란 기대감 때문이다. 하지만 리즈 트러스 전 총리의 사임이 근본적인 문제 해결은 아니므로 파운드화가 안정화됐다고 볼 수는 없다.

 

영국의 해가 지지 않기 위해서는 현재 과다채무국이라는 경제의 구조적인 문제 해결이 필요하다. 즉, 그동안 재정 정책을 위해 쌓아온 채무의 비율을 줄여야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비용을 투자해야 한다. 채무의 비중을 줄이기 위한 정책을 시행한다면 한동안 영국 경제의 침체는 피해가지 못할 것이다. 그로 인해 그 기간 동안 채무의 유혹에서 벗어나기 힘들 것이다. 하지만 채무의 유혹에서 벗어나는 노력이 감행된다 하더라도 경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리라 단언하기는 어려운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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