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자경주의, 당신은 탐정입니까
디지털 자경주의, 당신은 탐정입니까
  • 김세은 수습기자
  • 승인 2022.11.29 01: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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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픽사베이
출처 픽사베이

인터넷에서 정의라는 이름으로 개인이 심판관이 되어 타인의 죄를 묻는 현상이 급증하고 있다. 이들은 타인을 심판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직접 징벌하기도 한다. 이처럼 규범을 어기거나 물의를 일으킨 행위자에게 네티즌이 온라인상에서 자발적으로 응징이나 보복하는 것을 ‘디지털 자경주의’라고 한다.

 

디지털 자경주의가 등장한 배경에는 사법부와 경찰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있다. 사법부는 '웰컴투 비디오 사건', '스토킹 처벌법' 등 각종 강력범죄에 대해 솜방망이 처벌을 내리고 법률이 국민 여론을 반영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며 뭇매를 맞았다. 경찰 수사 역시 신임을 얻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우리나라의 경찰 신뢰도는 2022년 국제협력개발기구(OECD) 21개국 중 19위를 기록했다. '경찰을 신뢰한다'고 응답한 사람이 51.21%로, 평균인 67.1%를 크게 밑돈 것이다. 사법기관과 사법 체계에 대한 신뢰도 역시 15위에 그치며 우리나라의 사법체계에 대한 국민 정서를 여실히 드러냈다.

 

디지털 교도소와 한강 대학생 사건은 디지털 자경주의를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디지털 교도소는 솜방망이 처벌을 하는 사법부를 대신해 자신들이 직접 범죄자의 신상을 공개하겠다며 설립된 웹사이트다. 이들은 성범죄자들의 사진과 직장, 전화번호 등이 담긴 개인정보를 공개하고 응징하며 논란이 됐다. 이를 두고 진준형 변호사는 “사회적인 심판이라는 명목으로 행해지는 디지털 교도소는 법률의 근거 없이 개인적이고 자의적으로 행해지는 범죄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한강 공원에서 실종됐다가 숨진 채 발견된 한강 대학생 사건 역시 네티즌이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으며 사건이 커졌다. 이들은 네티즌 수사대를 꾸려, 대학생 손 씨가 함께 술을 마셨던 친구 A씨에게 살해되었으나 A씨가 고위 간부와 친인척 관계이기 때문에 경찰이 진실을 은폐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서울 경찰청이 이례적으로 A4용지 23쪽 분량의 보고서를 인터넷에 공개했음에도 네티즌의 반발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디지털 자경주의의 가장 큰 문제점은 자기 확신과 자아도취다. 이는 사법부와 경찰보다 자신들이 사건의 진실을 더 잘 알고 있다는 착각과 진실을 바로잡고 있다는 비뚤어진 정의감에서 비롯된다. 이들은 단순히 뉴스를 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탐정이나 경찰이 된 양 있지도 않은 진실을 요구하기도 한다.

 

경제인문사회연구회 남궁현의 <디지털 자경주의 논점과 형사정책적 과제 및 전망>에 따르면 선의로 시작한 자경단이라 할지라도 순식간에 신상 털이의 주범이 될 수 있다. 검찰에 기소된 피의자의 신상이 네티즌들에 의해 악의적으로 공개된다면 또다른 피해를 양산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어, 남궁현 연구원은 ‘린칭‘ 역시 문제라고 지적한다. 린칭은 지역이나 사회의 규범을 어겼다고 생각한 사람들에게 잔인한 처벌을 가하는 사적 제재 행위다. 이는 범죄자가 저지른 범법 행위와 디지털 자경단이 보복한 처벌의 균형이 맞지 않을 수 있으므로 문제가 된다.

 

미국 정치가 다니엘 패트릭 모이니한은 워싱턴 포스트의 특집 기사에서 “누구나 자신만의 의견을 가질 수는 있지만, 자신만의 사실을 가질 수는 없다”라고 말했다. 우리가 바라보는 것이 언제나 진실은 아니기 때문에 개인의 견해와 사실을 명확히 구분할 필요가 있다. 디지털 자경단의 시작은 정의감일 수 있으나, 법의 테두리를 벗어나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정의라는 이름으로 포장될 수 없는 범죄다. 또한, 누구나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경단이 될 수 있다. 우리 또한 사건을 접할 때 자신의 신념에 갇혀 보고 싶은 것만 보지 않고 한 발짝 떨어져 객관적으로 보도록 노력하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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