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과 분노의 도가니, 최소한의 인권이 보장되는 세상을 향해
슬픔과 분노의 도가니, 최소한의 인권이 보장되는 세상을 향해
  • 박주영(한국장애인개발원)
  • 승인 2011.10.05 15:49
  • 호수 2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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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도가니’로 장애인과 장애아동 성폭행범죄와 관련해 각계 각층에서 비판의 목소리와 대책마련 요구가 쏟아지고 있다. 지난달 개봉한 영화 ‘도가니’는 2000년부터 5년간 청각장애 특수학교 광주 인화학교에서 발생한 교장과 직원들의 장애아동들을 대상으로 한 성폭행실화를 바탕으로 한 공지영씨의 소설 ‘도가니’를 영화로 제작한 것이다. 영화는 개봉 8일만에 150만명이 넘는 관객이 다녀가면서 새로운 영화들이 쏟아지는 상황에서도 부동의 1위자리를 지키고 있다. 결국, 흥행에만 그치지 않고, 사회각계와 정치권에서도 핫이슈로 떠오르며 세상의 중심에 섰다.

 이처럼 뜨거운 관심은 이례적이다. 국민들은 이런 사실을 세상에 널리 알리고 대책을 촉구하는데 앞장서고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있다. 인화학교성폭력대책위원회가 9월 25일 포털싸이트 다음 아고라에 ‘인화학교 성폭력사건 재조사 요구’를 청원하였고 5만명을 목표로 하는 청원은 10월 2일 벌써 6만8천명을 넘어서고 있다. 정부도 이례적으로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경찰청은 청장 직속 지능범죄수사대를 광주에 파견하고 광주경찰청 성폭력 사건 전문수사관 10명과 함께 특별수사팀을 꾸렸다. 또한, 교육부는 기숙사가 설치된 전국 41개 특수학교에 다니는 장애학생의 생활 실태를 점검하기로 했다. 뿐만 아니라, 복지부는 ‘사회복지시설 투명성 강화방안’을 발표하고, 150여개 시설을 대상으로 ‘사회복지시설 운영 실태조사’를 실시한다고 밝혔다.

 장애인과 장애아동 등의 사회 취약계층에 대한 성폭력 문제와 이를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는 사회 구조가 문제의 핵심이다. 인화학교 사건에는 사회복지법인 사학재단의 폐쇄성과 성폭력을 바라보는 가해자 중심적 사고라는 두 가지가 있다. 구조적으로는 사학재단 장애인시설은 친인척이 보직과 인사권을 쥐고 있다. 처음에는 한두 명이 성폭력을 시작하게 되고 범죄를 알고 묵인하는 폐쇄성과 친인척 관계가 함께 작용하여 다수가 범죄자가 된다. 법적으로는 장애아동들에게 적용한 ‘항거불능’의 조항은 가해자들에게 처벌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게 하는 역할을 하였다. ‘항거불능’은 피해자가 죽을 힘을 다해 저항하지 않는 한 ‘좋아서 한 성관계’라고 판단하는 근거가 되는데 이는 가해자 중심적인 관점이 반영된 결과이다.

 따라서, 장애인과 장애아동의 성범죄의 근본적인 예방을 위해서는 가해자에 대한 엄중처벌을 우선시하는 ‘아동 성범죄 공소시효 폐지'를 포함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이 반드시 개정되어야 한다. 또한, 성폭력범죄가 신고제로 되어 있기 때문에 고소가 되고 난 뒤에도 피해자를 압박해서 합의서를 받아내는 바람에 처벌이 경하게 되거나 풀려나는 경우가 많아 이 부분도 바뀌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법인의 세습화 척결과 사회복지법인 운영의 투명성과 개방성을 보장하고 감시감독을 철저하게 하는 방향으로 ‘사회복지사업법’이 개정되어야 한다.

 법은 만인 앞에 평등하다. 하지만 때로 법은 사회적 약자편이 되어야 한다. 당시 사건의 공판담당 검사의 일기를 보면 더욱 분명해 진다.

 "정신이 번쩍 든다. 내가 대신 싸워주어야 할 사회적 약자들의 절박한 아우성이 밀려든다. 그날 법정에서 피가 나도록 입술을 깨물고, 눈물을 말려가며 한 다짐을 다시 내 가슴에 새긴다. 정의를 바로잡는 것. 저들을 대신해서 세상에 소리쳐 주는 것. 난 대한민국 검사다“

 상식적으로, 누가 생각해도, 아주 당연한 것. 최소한의 인권이 보장되어야 하는 것. 숨쉬는 것만큼 당연한 내용을 이렇게 소리 높여 주장해야 하는 것인지 잠시 의문이 들기도 한다. 영화를 보던 보지 않았던 이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대학생들에게 잠시 이 사건에 귀를 기울여 주기를 부탁드린다. 지켜보기 힘드니까, 너무 아픈 일이니까, 이번에는 외면한다고 하면 다음번에는 제대로 돌아보지 않음이 더 큰 미안함으로 다가 올 것이다. 이 사건을 통해 피해자들의 아픔을 이해하고 불편한 진실을 바로 보고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기반을 만드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우리가 함께 사는 세상, 최소한 사람으로서 살아갈 수 있는 곳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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