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대자보, 대학생이 누릴 당연한 권리
[기획] 대자보, 대학생이 누릴 당연한 권리
  • 이서림 기자
  • 승인 2022.12.12 09:05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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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다소 침체됐던 대학사회 속 대자보가 다시금 가톨릭대 학생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지난 10월 15일 평택 SPC 계열 제빵공장에서 20대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에 SPC 불매운동이 대학가로 확산됐고, 본교 성심교정의 총학생회 게시판에도 SPC 불매 대자보가 부착됐다. 하지만 총학생회의 승인을 받지 않은 게시물이라는 이유로 대자보가 철거됐고, 이후 학생들의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라는 대자보가 부착됐지만 그 역시 철거되며 논란은 거세졌다.

 

대자보란?

대자보는 고대 로마 시대부터 대중들에게 소식을 알리는 벽신문에서 출발했다. ‘대자보’라는 단어는1930년대 중국의 제2차 국내혁명기 당시 모택동이 대자보 형식으로 포고문을 작성하면서 직접적으로 언급됐다. 특히 대자보는 1950년대 ‘문화대혁명 기간’에 언론의 억압과 사회의 규제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비판을 가능하게 했다. 이 시기를 기점으로 대자보가 사람들이 익히 알고 있는 집합 행동의 성격을 띠기 시작한 것이다.

 

한국에는 해방 직후 대자보가 유입됐지만, 집합행동의 역할로서 두각을 나타낸 것은 1970년대 이후부터였다. 억압과 규제가 일상과도 같던 1980년대, 대자보는 학생과 시민들 사이 사회 문제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표출하는 수단으로 이용됐다. 접근성이 좋다는 특성상 대자보는 현대 사회의 공론장과도 같은 역할을 수행하며 대중을 향한 의견 피력 수단으로 선택받았다.

출처 오마이뉴스 - 대자보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
출처 안녕들 하십니까 페이스북 페이지 -  대자보 ‘안녕들 하십니까’

1980년대 학생운동의 시기가 지나고 점차 사그라들던 대자보 열풍은 2010년대 다시금 급부상한다. 2010년 고려대의 자퇴 대자보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는 주요 언론들의 큰 주목을 받았고, 2013년 대자보 ‘안녕들 하십니까’는 대학사회의 시국선언으로 이어지며 사회에 큰 파장을 불러왔다. 이 외에도 미투 운동 고발, 추모 등의 다양한 문제들을 수면 위로 끌어올리고 사람들의 주목을 받으며 숙의 민주주의의 발전에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대학사회 내 대자보는 자신이 느낀 사회 문제를 전체로 확산시키는 효과적인 수단으로 자리매김했다. 대자보는 누구든 종이와 펜만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세상에 알릴 수 있기 때문에 그 자체로 표현의 자유를 상징하기도 한다. 특히 당대의 사회 문제를 직접 목격하고 경험하는 주체인 대학생에게 자유로운 공론장이 되어주고 있어 사회문화적으로도 큰 가치를 가지고 있다.

 

교내에 발생한 대자보 철거 사건

 

출처 대자보 작성 학생 양광모(행정・21)

 우리 학교에서도 대자보와 표현의 자유에 대한 논란에 불씨를 지핀 사건이 발생했다. 10월 25일 새벽 4시, 총학생회 게시판에 SPC 불매 대자보가 부착됐다. 이 대자보는 오후 12시 전후로 철거돼 작성 학생에게 전달됐다. 이 과정에 대해 해당 학생은 “학생지원팀으로부터 ‘규격에 맞지 않는 게시물이기 때문에 철거한 것이다, 이 규정이 총학생회 게시판에도 해당이 된다’고 전해 들었다”고 말했다.

 

출처 대자보 작성 학생 양광모(행정・21)

10월 26일 해당 학생은 다시 총학생회 승인 없이 총학생회 게시판에 대자보를 부착했다. 그리고 다음 날인 27일, 이 대자보 역시 다시 철거됐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이에 해당 학생은 “총학생회 게시판에 붙인 대자보를 학생지원팀이 철거했다”며 “초반에는 이 사실을 인정하지 않던 학생지원팀이 언론을 통해 사건이 알려지자 인정을 해 어이가 없었다”고 심경을 토로했다.

 

25일 게시된 대자보에 대해 학생지원팀은 “총학생회 게시판은 총학생회에서 승인된 홍보물만 게시되어야 하는데 총학생회에서 게시한 게 아니어서 회수했다, 해당 학생에게 게시물 규격 안내와 함께 ‘총학생회 게시판은 규격 상관없이 게시 가능하지만 총학생회의 승인을 얻어야 한다’고 안내했다”고 밝혔다.

 

26일 게시된 대자보 건에 관해 학생지원팀은 “학생지원팀 근로학생이 10월 26일 학생회 게시판에 게시된 대자보를 학생지원팀에 보고 하지 않고 철거했고, 그날 저녁 학생 커뮤니티에서 이슈가 되어 근로학생 본인이 해당 학생에게 직접 전화해 사과했다”고 말했다. 또한 “다음 날인 27일, 학생지원팀에 본인 실수로 해당 대자보를 떼었다고 학생지원팀에 보고했고, 학생지원팀의 지시로 대자보를 철거한 것이 아닌 근로학생의 실수로 일어난 일이지만 학생지원팀 역시 해당 게시자에게 사과의 말을 전했다”는 입장을 밝혔다.

 

출처 학생지원팀 - 공공게시판에 A4로 게시된 SPC 불매 관련 게시물

이러한 사건으로 본교 학생지원팀은 학생들에게 표현의 자유를 훼손하는 게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이후 A4용지 9장을 이어 붙인 대자보가 등장했지만, 이 역시 본교 “홍보물 게시에 관한 규정”에 맞지 않다는 이유로 승인을 받지 못해 논란은 더욱 거세졌다. 이에 학생지원팀은 위의 대자보 내용과 동일한 내용으로 홍보물 게시 규격에 부합하는 게시물이 교내 공공 게시판에 게시되어 있음을 알리며, “학교 차원의 대자보 ‘내용’ 검열은 없었고, 학생과의 적극적인 소통을 위해 더욱 노력하겠다”는 입장을 남겼다.

 

철거된 대자보, 사라진 표현의 자유

가톨릭대 내 대자보를 둘러싼 표현의 자유 논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3년 대자보 ‘안녕들 하십니까’를 시작으로 한 대학사회의 움직임 속에는 가톨릭대도 존재했다. 그러나 당시 본교는 총학생회를 통해 ‘대자보 부착 승인제도’를 운영했기 때문에 수많은 대자보가 관리라는 명분으로 철거됐다. 이는 9년이 지난 현재에도 바뀌지 않았다. 여전히 대자보를 부착하려면 해당 게시판 관리주체의 승인이 필요하다는 규정이 존재한다.

 

대학사회 표현의 자유 논란은 본교에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숭실대의 조만식기념관 앞 비공식적인 대자보 공간처럼 학생들의 자유로운 의사 표현을 위한 조건이 갖춰진 학교들도 존재하지만, 그 외 대부분의 타 대학들은 본교와 같은 상황이다. 인하대의 경우 7월 15일 발생한 ‘성폭행 사망 사건’에 대한 학생들의 대자보가 학내 게시판에 게시됐지만, 학교 측에서 사전 승인을 받지 않았다는 이유로 3시간 만에 대자보를 떼어냈다.

 

지난 14일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는 대학 측이 대자보를 게시하려는 학생에게 사전 승인을 요구하는 것이 인권침해라는 견해를 발표했다. ‘언론·출판에 대한 허가나 검열과 집회·결사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않는다’는 헌법 제21조 22항에 따른 판단이다. 이에 인권위는 학교 미관과 홍보게시물 질서를 위한 학교 측의 규제가 어느 정도는 필요하지만, 학생들의 표현의 자유가 침해되지 않는 선에서 교내 홍보 게시물 관리지침과 학사 행정규정 등을 개정할 것을 권고했다.

 

가톨릭대 사회학과 정영신 교수는 “표현의 자유는 민주 사회의 최상위의 가치이기 때문에 하위의 여러 규정들로 표현의 자유의 본질적인 내용이 침해되어서는 안된다”고 언급했다. 또한 “대자보는 이전부터 학생들이 자유로운 형식과 내용으로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는 매체였기 때문에 여타의 옥외광고물과는 그 성격이 다르다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출처 학생지원팀 - 공공게시판이 아닌 타 게시판에 게시된 규격 외 홍보물

본교의 ‘홍보물 게시에 관한 규정’에 따르는 게시판은 교내 공공 게시판이다. 이 규정은 지구온난화와 무분별한 게시물로 인한 환경오염을 막기 위해 지난 2021년 12월에 개정되었다. 교내의 공공 게시판 이외에 총학생회 게시판 등은 해당 관리주체에 의해 관리되어지고 있고, 규격 상관없이 게시물을 부착할 수 있다. 하지만 총학생회 게시판의 경우, 현재 사용 규정이 없는 상황이다. 대자보와 규격에 관한 논의는 본교 총학생회 중앙운영위원회에서 몇 차례 논의된 적이 있으나 아직 결론이 나오지 못했다. 총학생회 비상대책위원회는 이에 대해 곧 자체적으로 제작된 규정을 공지하겠다고 밝혔다.

 

‘큰 글씨로 알린다’는 뜻을 가진 대자보. 시대에 따라 그 형태가 변하기도 했지만, 지나가는 사람들의 이목을 이끌어내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의견을 알릴 수 있다는 그 본질은 여전히 지켜져야 한다. 대학교는 오랜 시간 동안 학생들에게 민주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는 바탕을 제공해왔다. 학생들이 자유롭게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진정으로 민주적인 대학사회를 만들기 위해 본교와 학생 간의 충분한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참고문헌
권수빈, 김진희(2018). 청년의 일상 문화정치는 어떻게 실천할 수 있는가, 한국국제문화교류학회.
이승연(2022) 대자보 게시 사전승인 요구한 대학…인권위 "표현의 자유 침해", 연합뉴스.
이재(2013). 붙이는 학생,떼는 학교 ‘안녕 못한 대자보’, 한국대학신문.
장나래(2022). [인터뷰] 인하대 ‘쥐어뜯긴 대자보’…온라인 말고 광장에 붙인 이유, 한겨레.
최수영(2020). 대자보의 기록화 필요성과 발전방향: 대자보의 사회문화적 가치를 중심으로, 한국외국어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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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성진 2022-12-26 04:07:24
시의적절하고, 대학 민주주의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기사입니다
많은 정성이 담긴 기사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