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영역을 침범하는 AI
창작 영역을 침범하는 AI
  • 민윤재 기자
  • 승인 2022.12.27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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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올해 열린 미국 콜로라도 주립 박람회에서 AI가 그린 그림이 디지털 아트 부문 1위를 차지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게임 기획자인 제이슨 앨런이 AI 프로그램으로 그린 ‘스페이스 오페라 극장(Theatre D’opera Spatial)’ 작품이 1위를 수상한 것이다. 앨런은 텍스트로 된 설명을 입력하면 이미지로 변환시켜주는 ‘미드저니’라는 AI 프로그램을 사용해 작품을 완성했다. 디지털 아트는 부문의 특성상 창작 과정에서 색 보정 등 디지털 방식 편집을 허용하고 있다. 하지만, 작가의 손길이 단 한 번도 닿지 않은 작품은 없었다. 이에 대해 앨런은 출품자 이름에 ‘미드저니를 거친 제이슨 M. 앨런’이라고 명시해 AI 그림임을 공개했다고 항변했다. 이어 대회 주최 측도 “미드저니가 AI라는 사실을 몰랐지만 알았더라도 앨런에게 상을 줬을 것”이라며 심사 결과를 뒤집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해당 논란은 ‘AI의 예술 활동은 예술로 인정될 수 있는가?’라는 논쟁에 불을 지폈다.

 

최근 AI는 미술 외에도 다양한 창작 영역에서 활약하고 있다. 시작하는 아이라는 뜻을 가진 AI ‘시아’는 카카오브레인의 AI 언어 모델 KoGPT*를 기반으로 시를 쓴다. 이 AI는 한국어 데이터를 학습하고 사전적·문맥적인 이해를 거친다. 지난 8월에는 ‘시를 쓰는 이유’라는 시집도 출간했다. 광주과학기술원(GIST)의 안창욱 교수팀이 개발한 ‘Evolutionary Music’이라는 의미의 이봄(EvoM) 역시 국내 최초 작곡하는 AI다. 해당 AI는 3분짜리 곡 하나를 만드는 데 10초밖에 걸리지 않는다. 특히 작곡 과정에서 기존 곡들과 비슷한 멜로디를 비교할 수 있어 저작권 문제도 피할 수 있다.

* KoGPT: 대표적인 초거대 AI인 오픈AI GPT-3의 한국어판으로, 카카오브레인에서 제작한 딥러닝 언어 처리 체계

 

대기업 LG도 AI 사업에 뛰어들었다. LG는 AI휴먼 ‘틸다’를 아트 큐레이터로 활용했다. 해당 AI휴먼은 디자이너 박윤희와 소통하며 패턴 디자인을 완성했다. 틸다는 무려 3천 장 이상의 이미지와 패턴을 창작해 내며 뉴욕 패션위크까지 진출했다.

 

AI의 파급력은 나날이 커지고 있다. 이쯤에서 우리가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는 ‘AI의 예술 활동이 과연 예술의 영역에 속할 수 있는가?’라는 것이다. 하나의 예시를 살펴보자.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세계 최초 AI 그림 ‘에드몽 드 벨라미’는 43만 2,500달러, 한화로 약 6억 원이라는 금액에 낙찰됐다. 이 작품은 14세기와 20세기 사이에 완성된 1만 5,000점의 고전적 초상화를 학습한 인공지능 GAN 알고리즘으로 만들어졌다. 여기서 눈여겨볼 대목은 AI가 예술적 가치는 물론이고 상품성까지 갖추고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현재 AI가 생성하는 예술 작품은 이미 존재하는 창작물을 학습해 재편집하는 형태다. 많은 이들은 이를 두고 ‘표절일 뿐이다’라는 입장과 ‘AI를 통해 예술 작품을 만들어내는 것도 새로운 인간의 창의성’이라는 입장으로 양립하고 있다.

 

전문기관에서도 AI의 예술 활동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지난 10월 3일, 특허청은 미국 AI 개발자 스티븐 테일러 씨가 개발한 인공지능인 ‘다부스(DABUS)’를 발명자로 표시한 국제특허 출원을 무효 처분했다고 밝혔다. 특허청 측은 “자연인이 아닌 AI를 발명자로 한 특허 출원은 허용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자연인, 즉 인간만 발명자로 인정하겠다는 의미다. 반면, 미국 저작권청은 AI를 활용한 공상과학 만화 ‘새벽의 자리야’의 저작권을 최종 승인했다. 해당 작품은 앞서 언급된 AI 프로그램 ‘미드저니’를 활용해 제작됐다. 저작권이 AI에게 직접 부여된 것은 아니지만, AI를 이용해 작품을 만든 작가에게 사상 처음으로 저작권이 부여된 결정은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AI의 저작권 소유에 대해서는 아직 전 세계적으로 그 자체를 부정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최근 AI가 예술 및 문화계로 스며들면서 저작권 문제에 대한 판단도 다각도로 변화되고 있다.

 

김종근 미술평론가는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최근 AI 작품의 등장은 기존 작가들에게 ‘멘붕’이라고 할 정도로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며 “자율주행, 서빙 로봇 등과 같이 예술에서도 시대의 흐름을 거스를 순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명 웹툰 작가 주호민은 최근 개인 방송에서 현 세태에 대해 “창작자가 직접적으로 위협을 받진 않을 것 같지만, 창작자를 돕는 기술 어시스턴트는 빠르게 대체될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했다. 평론가와 창작자 모두 기술 발전에 따른 AI의 침투를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책 ‘아티스트 인 머신’의 저자 아서 밀러는 "창의성이 인간만의 영역이라는 주장은 어쩌면 자만일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AI의 창작은 더 많은 분야에서 이뤄질 것이다. 하지만, 인간의 창작물을 학습한 AI의 창작물을 새롭다고 정의할 수 있는지, 저작권 이슈는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는 아직도 풀어나가야 할 숙제다. 현재 AI의 발전 속도를 보면 AI를 발명자로 인정해야 할 때가 성큼 다가온 것 같다. AI 발명을 둘러싼 쟁점들에 대해 학계·산업계의 지속적인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AI의 성장이 미래의 인간에게 득이 될지, 실이 될지는 우리에게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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