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손 간소화’ 누구를 위한 법인가
‘실손 간소화’ 누구를 위한 법인가
  • 오하은 기자
  • 승인 2023.03.22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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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업계 14년간의 과제 … 여당 적극 개입으로 급물살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무려 14년간 반복되던 ‘실손 보험 청구 간소화’에 대한 공방에 또다시 불이 붙었다. 윤석열 정부의 대선후보 당시 공약이자 현 정책 과제인 ‘디지털 플랫폼 정부’와 맞닿아 있는 만큼, 정책 실현 가능성에 대한 업계의 기대감이 그동안의 논의와 사뭇 다르다. 지난 25일 국회에서 열린 원내 대책회의에서 성일종 정책위의장은 “실손 보험 청구 간소화를 의료계가 거부한다면 입법으로 처리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동안은 의료계의 반대에 부딪혀 답보 상태였던 실손 간소화 문제를 강제로라도 해결하겠다는 의미다.

 

실손 보험이란 피보험자가 질병·상해로 의료기관에 입원 또는 통원하여 치료를 받거나 처방조제를 받은 경우, 본인이 실제로 부담한 의료비를 보상*하는 상품을 뜻한다. 제2의 건강 보험이라고 불릴 만큼 대상 국민에게 끼치는 영향이 크고 잦으나, 지금의 실손 보험은 실제 가입자 10명 중 5명이 청구를 포기할 만큼 그 방식이 번거롭다.

*「국민건강보험법」에서 정한 요양급여 또는 「의료급여법」에서 정한 의료급여 중 본인부담금 및 「국민건강보험법」 또는 「의료급여법」에 따라 보건복지부장관이 정한 비급여의 합계액에서 약관에서 정한 자기부담금을 제외한 금액을 보상한다.

 

지난해 윤창현 의원실에서 발표된 ‘실손보험 청구 전산화 도입 시 지급 보험금 변화 추정’ 자료에 따르면, 실손보험 청구 전산화 시 3년간(20~22) 실손 보험 지급금이 약 7,410억 원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다시 말해 지난 3년간의 실손 보험금 미청구 금액이 7410억원에 달한다는 뜻이다. 금융소비자연맹이 실시한 한 설문조사에서는 실손 보험금 정산 청구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78.6%에 달했다.

 

소비자의 편익과 직결된 사안인 만큼 현안에 대한 여당의 해결 의지가 강하다. 윤 의원은 지난 11월 토론회에서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를 위한 ‘실손비서’ 도입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금융행정 최고의 행정과제”라고 밝히기도 했다.

 

이에 대해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는 지난해 7월 실손보험 청구간소화 개정안 저지를 위한 전담 TF를 구성하고 일관된 반대 입장을 표명해왔다. 실손보험 청구간소화가 의료 자율성을 침해하고, 부당한 행정부담을 강요하며, 결국 가입자인 국민의 손해로 이어진다는 것이 주된 이유이다. 기존의 논의대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하 심평원)이 전산화 정보 중개기관으로 지정될 시, 비급여 진료와 관련된 자료가 확보되어 의료 비급여에 대한 통제가 가능해진다. 의협 관계자는 한 매체 인터뷰를 통해 이를 “비보험이나 진료 데이터 일체를 다 넘겨받아 일선 의료기관에 대한 정보를 다 장악하겠다는 것”이라고 평가하며 “타협의 여지가 없다”고 밝혔다.

 

더불어 민감 개인정보인 환자 진료정보 유출 개연성이 높다는 점도 의협의 우려 사항이다. 보험사가 실손보험 청구간소화를 통해 축적한 개인 의료정보를 바탕으로 보험금 지급 거절과 보험 가입, 갱신 거절 및 보험료 인상 자료로 사용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편 사안에 대한 국민의 저항도 거세다. 지난 1일 ‘의료민영화 저지와 무상의료 실현을 위한 운동본부’는 기자회견을 통해, 원격의료 및 실손 보험 청구 간소화 제도 추진 중단을 촉구했다. 본부 측은 “영리 추구에 혈안인 민간 보험사들이 환자 보험금 지급률을 높이기 위해 청구간소화 법을 추진한다고 믿는 것만큼 순진한 일은 없을 것”이라며, “보험입법 개정 시 소액청구뿐 아니라 건강보험 진료를 포함한 모든 디지털화 된 진료정보가 자동 전송돼 가입 및 지급 거절, 보험료 인상 등에 활용하지 않을 리가 없다. 결국 보험금 지급률은 더욱 낮아질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당정협의회가 심평원의 대안으로 마련한 중개기관인 보험개발원 제의도 받아들여지고 있지 않는 것으로 보아, 찬성과 반대 양측 간의 갈등은 더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업계 간 중개안을 마련하는 것이 향후 관건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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