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경] 전세 리스크가 온다 ① 갭 투자
[생경] 전세 리스크가 온다 ① 갭 투자
  • 황성진 기자
  • 승인 2023.03.28 15:1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생경’은 근래의 생생하지만 낯선 경제 시사를 이해하기 쉽게 풀어내는 코너입니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전세 제도는 임차인이 임대인에게 보증금을 맡기고 임대지를 계약 기간 동안 임차하며, 계약이 만료되면 보증금을 모두 돌려받는 제도다. 보증금은 통상적으로 집값의 50~80% 내에서 설정되나, 집값을 넘기는 경우는 드물다.

 

임차인은 정기적으로 월세를 지출하는 대신 보증금을 맡겨 목돈을 일반적인 시장금리보다 높게 운용하는 효과를 누릴 수 있고, 임대인은 목돈을 일반적인 시장금리보다 낮게 빌릴 수 있다. 이러한 이점이 발생하는 이유는 시장금리가 은행에 돈을 맡길 때와 빌릴 때가 다르게 책정되기 때문이다.

 

전세에 관한 일반적인 오해에는 '임대인이 임차인의 보증금을 은행에 보관하며, 이자 수익을 통해 월세를 충당한다', '전세 보증금은 반드시 돌려받을 수 있다' 등이 있다. 전세의 채무-채권 관계는 반드시 이행되어야 하며, 이행되지 않을 경우 즉각적으로 신용에 영향을 주는 계약이 아니다. 전세 제도는 주택을 담보로 한 개인 간의 대출인 사금융이다. 임대인은 임차인의 보증금을 자유롭게 운용할 수 있으며, 심지어는 갚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다.

 

대부분의 임대인은 시장금리보다 낮게 빌린 목돈을 다른 곳에 투자하여 큰 수익을 올리기를 원하기 때문에 보증금을 다른 부동산, 펀드, 정기예금과 같이 유동성*이 낮고 수익률이 높은 곳에 투자한다. 투자처의 유동성이 낮아도 전세 계약 만료될 때 임차인이 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있는 이유는 새로운 임차인이 맡기는 보증금을 기존의 임차인에게 돌려주기 때문이다.

* 유동성: 자산을 가치 손실 없이 현금으로 전환할 수 있는 정도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금리 인상을 단행한 이후, 전 세계적으로 금리가 인상되며 호황과 갭 투자로 인해 상승했던 주택 가격이 하락했다. 갭 투자란 임대인이 임차인의 보증금에 은행 대출을 합해 전세 주택을 구매하거나, 새로운 주택을 구매하여 시세차익을 기대하는 투자를 말한다.

 

전세 사기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커지자, 전세를 꺼리는 현상이 심화하며 임대인은 새로운 임차인을 구하기가 어려워졌다. 여기에 주택 가격 하락과 금리 인상이 겹치며 갭 투자를 한 임대인은 집을 매매해 보증금을 상환하고 큰 빚을 지게 되는 경우도 생겼다. 임대인이 임차인의 보증금을 적극적으로 상환하는 경우, 갭 투자로 인한 손실이 임대인에게 국한된다. 하지만 보증금을 반환하지 못하고 주택을 경매에 부치는 경우, 갭 투자로 인한 피해가 임차인에게 전가될 수 있다.

 

주택이 경매로 넘어가도 임차인은 보증금을 온전히 돌려받지 못할 수도 있다. 대항력**이 있는 임차인은 경매금이 보증금보다 낮다면 경매 낙찰자에게 보증금을 요구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경우, 경매 가격에 보증금도 포함된 것으로 보기 때문에 유찰될 가능성이 매우 높아진다. 유찰 끝에 채권자가 더 이상 경매를 신청하지 않으면, 결국 채권자는 보증금 대신 ‘깡통 주택’을 떠안게 된다.

** 대항력: 임차 주택의 권리를 승계한 사람에게 임대차의 내용을 주장할 수 있는 법률상의 힘

 

지난 15일 오기형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신용회복위원회로부터 제출받은 ‘최근 5년간 채무조정 현황’ 자료에 따르면, ‘재테크 시도(빚투)’ 사유로 채무조정을 신청한 20, 30대의 수는 2018년 403명에서 3,382명으로 8배 이상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금융 시장의 변화가 가장 크고 빠른 지금, 변화하는 자산가치를 이용해 일확천금을 노린 사람들의 수가 늘어난 점을 시사한다.

 

작년 7월 윤석열 정부는 대통령이 주재하는 제2차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투자 실패로 인한 청년층의 이자 부담을 완화하는 정책을 발표했다. 야권과 정책에 반대하는 측에서는 투자가 아닌 투기를 구제해주게 된다면 사회 전반의 신용이 무너지고, 성실하게 사는 사람들을 매도된다는 의견을 내비치기도 했다.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 사회 분위기 속 부채로 인해 재기의 기회를 잃어버리게 하는 일은 지양해야 하겠지만, 투기의 유혹을 물리치고 성실히 생활해온 사람들을 역차별하는 일 역시 지양해야 한다.

 

현명한 전세 입주자가 되기 위해서는 전세 제도에 대한 이해와 주택 시장의 흐름을 바탕으로 거주지를 선택해야 한다. 전세를 구할 때는 해당 건물의 건물등기부등본을 열람해 저당금과 보증금의 합이 주택 가격의 70%를 넘는지 않는지 확인하고, 주택도시보증공사(HUG)에서 판매 중인 전세 보험에 가입하는 것이 좋다. 또한, 여러 공인중개사를 통해 해당 주택뿐만 아니라 인근 주택의 가격을 확인하며 과대 평가된 매물이 아닌지도 살펴본다면 전세 보증금으로 인해 곤욕을 치를 일은 줄어들 수 있을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