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과거사 사죄’,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칼럼] ‘과거사 사죄’, 더 나은 미래를 위해
  • 김단비 수습기자
  • 승인 2023.05.23 12: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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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국가보훈처
출처 국가보훈처

지난 3월 전두환 씨 손자 전우원 씨가 광주 국립5·18민주묘지를 참배했다. 전 씨는 “상처받은 모든 분들의 억울한 마음을 최대한 풀어드리고 싶다”며 사죄의 뜻을 밝혔다. 이에 광주 시민들은 상반된 반응을 보였다. 적극 환영의 뜻을 밝힌 5·18 단체가 있는가 하면, ‘큰 의미 없다’며 냉소적인 태도를 내비치는 시민도 있었다.

 

전 씨의 동기가 타당하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사죄 행보를 통해 억울하게 목숨을 잃은 시민군과 유족들의 고통을 해소하고 안위를 살피기보다, 본인의 죄책감을 덜어 궁극적으로는 종교적 신념을 지키고자 한다는 것이다. 사과의 주체로서 적절한지에 대한 의문도 제기된다. 전 씨는 1980년에 태어나지도 않은 세대이며, 광주민주화운동과의 연관성은 그의 할아버지가 전두환 씨라는 것이 전부다. 이처럼 전우원 씨의 사죄는 쉬이 규정하거나 평가할 수 없는 점들이 많았다. 그러나 전 씨가 광주를 찾았을 때, 겉옷으로 묘비를 닦으며 고개 숙였을 때, 유족들은 그를 품에 안고 “와 줘서 고맙다”며 맞아 주었다.

 

전 씨의 사죄가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진상을 드러내거나 피해를 보상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진상 규명과 피해 보상보다 더 큰 의미를 가질 수도 있다. 국가 권력에 의한 무고한 죽음을 기리고 희생자들에게 용서를 구하는, 이른바 ‘과거사 사죄’는 양심의 측면에서 가치 있는 행위다. 생존 피해자들과 유족들을 위로하고 반성의 뜻을 밝힘으로써 과거사에 대한 도덕적 책임을 지려는 것이다. 과거사에 대해서 금전적 보상이나 희생자의 훼손된 명예 복권과 함께 ‘진심 어린 사과’를 강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치적·법적 책임은 도의를 전제로 의미를 가진다. 아무리 전(前)세대의 과오라 할지라도, 그것을 부끄러워하고 다시는 반복하지 않으려는 양심 말이다.

 

꾸준한 과거사 사죄로 신뢰를 회복한 국가가 있다. 바로 독일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은 폴란드를 비롯한 여러 국가에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 전쟁 이후 독일은 나치의 잔재를 청산하고 전범을 처벌하는 데 주력했다. 침략했던 국가들에게 끊임없이 사죄하고 배상했다. 특히 1970년 빌리 브란트 전 서독 총리가 폴란드를 방문해 유대인 위령탑 앞에서 무릎을 꿇고 나치의 유대인 학살을 사죄한 장면은 세계사에 길이 남을 상징적인 장면이다. 브란트 총리 이후 최근까지도 독일의 국가 지도자들은 나치즘에 대한 속죄 의식을 몸소 실천하고 있다. 이는 정치인뿐만 아니라 독일의 일반 국민들에게서도 볼 수 있는 모습이다. 교육을 통해 ‘기억 문화’를 형성한 독일인들은 폭력의 역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역사를 공부하고, 이를 바탕으로 행동의 기준과 방향성을 설정한다. 과거의 존재 가치를 ‘미래와의 관계’로 보고, ‘기억함으로써 나아가는’ 과거의 미래 지향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기억 문화는 독일이 주변국들의 신임을 되찾고 강대국으로 성장하는 힘으로 작용했다.

 

한편 지난 7일 일본의 기시다 총리는 강제동원 피해자들과 관련해 “나 자신은 당시 혹독한 환경에서 많은 분이 고통스럽고 슬픈 일을 겪으셨다는 것에 가슴 아프다”는 말을 남겼다. 유감을 표시하긴 했으나, 개인적인 입장임을 강조했다. 강제성을 행사했다는 사실 또한 인정하지 않았다. 대상과 주체가 불명확해 진정성 있는 사과라고 보기 어려웠다. 이번 방한에서 과거사에 대한 일본의 반성적인 태도를 기대했던 사람들에게는 실망스러운 발언이었다. 한일 관계 발전을 위해서 더 이상 사죄에 연연하면 안 된다는 견해도 있다. 1998년의 ‘김대중-오부치 선언’ 등 이미 일본의 사죄가 여러 차례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이들은 과거를 반복하기 마련”이라는 조지 산타야나의 말처럼, 숙원을 해소하지 못하면 관계의 진전도 어렵다. 한국과 일본 사이에 아무리 사회·문화적 교류가 잦고 물리적 거리가 가까워도 심리적 거리가 좁혀지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국가 차원의 구체적이고 명확한 사죄만이 한일 관계 정상화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독일과 일본의 사례로 알 수 있듯, 과거사 사죄는 상호 관계뿐만 아니라 각각의 미래를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다. 역사를 되짚어 보고 반성함으로써 도달해야 할 미래를 수정하거나 확립할 수 있는 것이다. 전우원 씨의 사죄는 여러 가지 한계에도 불구하고 이런 미래지향적인 관점에서 긍정적이라 할 수 있다.

 

과거를 직면하고 책임을 의식하는 것이 과거사에 대한 성숙한 태도다. 국가 간의 문제든 이념 간의 문제든, 그것을 회피하기만 하면 갈등의 골은 심각해질 것이다. 과거는 과거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끝없는 문제 제기와 성찰의 장으로 소환되어야’* 한다.

 

*전진성. (2021). 과거청산에 대한 이론적 탐구―이해와 치유의 (불)가능성을 중심으로., 역사비평, 135, 332-3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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