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배가압류’라는 족쇄 ─ 노란봉투법이 풀 수 있을까
‘손배가압류’라는 족쇄 ─ 노란봉투법이 풀 수 있을까
  • 윤채현 기자
  • 승인 2023.05.29 00: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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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카트' 스틸컷, 네이버 영화 포토
영화 '카트' 스틸컷, 네이버 영화 포토

“낙숫물이 바위를 뚫을 수 있을까요?” 회사의 구조조정으로 부당해고를 당한 동준은 노조를 설립하고 파업을 선택한다. 하지만 가해오는 회사의 압박과 경찰 인력 투입 속에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 영화 ‘카트’의 한 장면이다.

 

현실도 다르지는 않다. 우리 사회에서 노동자들이 겪는 문제는 노사 관계의 갈등을 그대로 보여준다. 작년 10월 SPC 계열사 사망 사고가 뉴스 1면을 채웠고, 지난달에는 건설노조 양회동 지대장이 “죄없이 정당하게 노조 활동을 했는데 업무방해 및 공갈이라고 한다”는 글을 SNS에 올린 뒤 분신자살했다. 이처럼 한국에서 임금노동자들은 약자의 위치에 서 있다.

 

현행법의 허점은

대한민국 헌법 제33조에 따르면, 근로자는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해 자주적인 단결권ㆍ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가진다. 단체행동권의 대표적 쟁의 행위인 ‘파업’은 노동자들이 자신의 요구를 관철하기 위해 생산활동이나 업무 수행을 일시적으로 중단하는 집단행동을 말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파업을 행사하는 노동자에게 돌아오는 것은 손해배상 소송 및 가압류 처분(이하 손배가압류)이다. 손해배상은 막대한 비용을 갚을 능력이 없는 노동자들을 극단으로 내몰고, 가압류 처분은 이들의 일상적인 경제생활을 저해한다. 무엇보다 파업에 대한 보복적 성격이 강하고, 헌법에서 명시하고 있는 단체행동권을 억제한다는 점에서 문제가 되고 있다.

 

노란봉투법이 뭐길래…

2013년 77일 간 쌍용자동차 파업 시위가 이뤄지자, 사측은 파업에 참여한 노조원을 대상으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이들에게는 약 47억 원의 배상 판결이 내려졌다. 이에 시민들은 노란색 봉투에 모금을 전달했고, 노란봉투 캠페인으로 이어졌다.

 

본 캠페인에서 착안해 작년 9월 정의당에서는 ‘노란봉투법’을 발의했다. 노란봉투법은 노동자의 쟁의행위에 대한 기업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한하겠다는 취지에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의 개정안으로 발의된 법안이다. 정의당 이은주 의원이 대표로 발의한 의안 원문에서는 ‘현행법은 노동쟁의의 범위가 협소하다. 노조 행위 등으로 인한 손해배상의 배상 청구의 범위가 지나치게 넓고 그 금액에 상한이 없어 노동조합의 활동이 위축되는 원인이 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이에 따라, 노란봉투법은 △근로자, 사용자, 노동쟁의의 정의 규정 수정 △손해배상 청구 제한 확대 △개인에 대한 손해배상 금지 등 기존 조항을 개정 및 신설하고자 한다.

 

노동계와 경영계 의견의 대립

노란봉투법은 노동 관계법상 보호의 필요성이 있는 특수고용노동자를 근로자의 범위에 포함한다. 또한 폭력이나 파괴로 인한 직접 손해를 제외하고는 노동조합 또는 근로자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도록 하고, 쟁의행위 등이 노동조합에 의하여 계획된 것이라면 개별 근로자에게는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도록 한다.

 

본 법안을 둘러싸고 노동계는 노란봉투법이 제정되어야 한다는 입장에 서 있다. 우선 현행되고 있는 노조법은 근로조건의 개선만을 파업 목적으로 인정하고 있어, 정리해고 반대 파업이나 노동법 개정 요구 파업 등을 불법으로 규정한다. 또한 노동자의 법적 범위가 좁아 일용직으로 분류되는 화물ㆍ건설노동자들은 현행 노동법의 보장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다. 따라서 노란봉투법이 제정돼 하청구조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을 보호하고, 헌법에서 말하는 노동삼권을 보장받아 노사가 대등하게 교섭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경영계와 현 정부는 노란봉투법을 반대하고 있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관훈토론회에서 노란봉투법에 대해 “법치주의와 정면으로 충돌하는 입법이며, 노사 관계의 불안과 경제적 손실로 그 피해는 노사 모두가 입는다. 또한 파업 등 실력 행사를 통해 모든 문제를 해결할 가능성이 커져 노사 갈등 비용이 증폭되는 문제가 있다”고 밝혔다.

 

본 법안은 이번 달 임시국회에서 본회의를 통과할 예정이다. 하지만 본회의에 직회부된 본 법안에 대해, 윤 대통령이 재의요구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망된다.

*재의요구권: 대한민국 대통령이 갖는 법률안 거부권으로, 정부가 입법부를 견제하는 가장 강력한 수단

 

노사는 추구하는 바가 서로 다르기에 갈등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그 과정에서 불합리한 해결방식은 미봉책에 그치거나, 갈등을 증폭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노동권의 필요성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연적으로 임금노동자가 사용자와 평등한 관계가 될 수 없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이때 손해배상 혹은 가압류 처분은 실질적으로 노동법의 헌법적 취지를 저해하는 효과를 낳는다. 노동권의 테두리를 법률적으로 협소하게 해석 및 적용하면서, 그 안에서 자신의 권리를 행사하기를 바라는 것은 과연 정의로운 사회일까. 조정과 합의를 통해 갈등을 풀어나가는 성숙한 사회가 도래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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