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자의 권리를 지켜주는 당연한 세상을 바라며
창작자의 권리를 지켜주는 당연한 세상을 바라며
  • 이정은 수습기자
  • 승인 2023.05.29 19: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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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정고무신, 故 이우영 작가의 억울한 이야기
출처 애니메이션 '검정고무신'
출처 애니메이션 '검정고무신'

추억의 애니메이션 ‘검정고무신’의 만화가 이우영(51) 씨가 3월 11일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유가족 측 진술에 따르면, 이 씨는 사망 전까지 ‘검정고무신’의 저작권 관련 소송 문제로 괴로워했다. 경찰은 이 씨가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파악했다.

 

피고소인이 되어버린 원작자

검정고무신 캐릭터 대행 회사인 형설앤과 이우영 씨는 4년 간 검정고무신의 저작권을 두고 법적 분쟁을 벌이고 있었다. 형설앤은 허락 없이 검정고무신 캐릭터를 다른 만화에 등장시키거나, 관련 상품을 제작하고 기업과 광고를 체결했다. 지난해에는 이 씨와 계약을 맺지도 않은 채 극장판 검정고무신을 제작했다.

 

이에 이 씨가 “사업권을 인정했을 뿐 저작권을 넘긴 것이 아니었다”며 계약에 의문을 제기하자, 형설앤은 이 씨를 고소했다. 두 번의 소송이 무혐의로 종결되자 이 씨의 부모를 저작권 위반으로 고소하기도 했다. 부모가 직접 운영하는 체험농장에서 DVD를 틀거나 단체 고객에게 사인해줬다는 것이 사유다. 다음은 그가 사망 전 검정고무신 영상에 남긴 댓글의 일부분이다.

 

검정고무신 작가 유튜브 댓글 캡처
검정고무신 작가 유튜브 댓글 캡처

“원작자가 왜 캐릭터 대행 회사 허락을 얻어서 만화를 그려야 하는지, 왜 피고인의 몸으로 재판을 받아야 하는지 어리둥절하기만 합니다만 순리대로 잘 해결될 거라 믿고 있습니다.”

 

재주는 곰이, 돈은 애먼 대행사가

형설앤은 계약서에 ‘모든 저작물에 대한 저작권 및 그에 파생된 모든 이차적 사업권을 포괄한다’, ‘손해배상청구권 및 일체 작품 활동과 사업에 대한 모든 계약에 대한 권리를 양도하고 위반 시 3배의 위약금을 낸다’ 등의 불공정 조항을 삽입했다. 이로 인해 이 씨가 15년 간 받은 돈은 1,200만원에 불과했다. 형설앤이 진행하는 모든 사업을 사후 통보 받았고, 수익 또한 제대로 정산받지 못했다. 대행사가 대부분의 이익을 가져가는 구조였기 때문이다. 관계자 A씨는 “만화가 나온 지 오래됐기 때문에 사업 수익 분배에 의구심을 갖지 못했다. 오히려 인지도가 떨어져 그런가 하며 자기 탓을 했다. 형설앤에서 진행하는 사업도 기사를 통해 알았다”고 말했다.

 

뿌리 깊게 박힌 악습, ‘매절계약’

원작자가 저작권을 뺏긴 사례는 검정고무신만이 아니다. 백희나 작가는 출판사를 상대로 ‘구름빵’의 저작권을 되찾으려 했지만 패소했으며, 홍은영 작가는 만화 ‘그리스 로마 신화’의 저작권 및 인세 지급 건에서 일부 승소해 인세를 받고 본인의 새 만화를 출간했다.

 

이처럼 창작자가 출판사나 제작사로부터 일정 금액만 받고 저작권 전체를 양도하는 것을 ‘매절계약’이라고 한다. 장철영 웹툰협회 자문 변호사는 “계약서에 ‘포괄적 위임’ 등 다양한 표현을 써서 작가들에게 2차 저작물에 대한 권한을 포기시키는 경우가 있다”고 밝혔다. 이어 “법률 조언을 해줘도 막상 협상테이블에서 작가들은 힘이 없다”고 주장했다. 회사가 이미 많은 권리를 가져갔고, 개인이 기업을 상대로 소송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힘들기 때문이다.

 

문화체육관광위원회는 문화산업의 공정한 유통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검정고무신 사태 방지법’이라 불리는 문화산업공정 유통법을 발의했다. 하지만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의 반대로 조건부 합의된 상태다. 해당 법의 금지행위는 중복 규제 우려가 있고, 금지 유형이 새롭게 포함돼 있어 신중한 접근이 필요한 것이 이유다. 방통위는 “신진 문화예술인을 위해 저작권 서비스를 강화하고, 저작권 교육을 확대함과 동시에, 창작자 권익 강화를 위한 법·제도적 보완 장치도 강구할 것”이라 밝혔다.

 

MBC 실화탐사대는 4월 6일자 방송에서 검정고무신 사건에 대해 다뤘다. 5월 11일에는 ‘웹툰 계약서 실태조사를 위한 국회토론회’에 이우영 작가의 친동생인 이우진 작가, 범유경 변호사, 조 은 웹툰 작가가 발제자로 참여했다. 현재 온라인으로 검정고무신 이우영 작가 추모관이 열려, 사람들이 팬아트나 추모의 글을 남기고 있다. 본 캠페인에 참여하는 것도 작가를 애도하는 한 방법이 되지 않을까.  

 

검정고무신 사태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이번 일로 작가들은 “창작자의 저작권을 보호하는 조치가 나와야 한다”며 입을 모으고 있다. 창작자의 권리를 침해하는 출판×대행×콘텐츠 업계 악습의 고리는 끊어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단순히 창작자들만 조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사회 전반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재발되지 않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 모든 창작자는 자신이 저작한 작품에 대한 권리를 뺏기지 않을 자격이 있다. 그런 당연한 세상이 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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