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나와 만나다, 멀티버스
또 다른 나와 만나다, 멀티버스
  • 박은진 기자
  • 승인 2023.09.18 13: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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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 스틸컷, 출처 소니픽쳐스 코리아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 스틸컷, 출처 소니픽쳐스 코리아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를 시작으로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플래시>까지, 최근 몇 년 사이 영화계에서 멀티버스(Multiverse)가 자주 등장하고 있다. 그중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은 코로나19의 여파에도 총 750만여 명의 관객을 기록하며 2021년 대한민국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했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올해 오스카에서 7관왕 수상의 영광을 안았으며, 애니메이션계 또한 멀티버스를 활용하기 시작했다.

 

이렇듯 영화계를 뒤흔들고 있는 멀티버스는 세계관*의 일종이지만, 본래는 천체물리학에서 사용한 용어다. 대중문화에선 ‘다중우주론’이라는 용어와 같은 의미로서 수많은 우주가 동시에 존재할 수 있음을 전제한다. 즉, 현재 우리의 우주에서는 발생하지 않은 사건과 인물이 동일한 시점의 다른 우주에서는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멀티버스를 저비용으로 구현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장치는 만화였기에, 등장 초기엔 만화책과 애니메이션을 위주로 해당 소재가 이용됐다. 특히 마블 코믹스는 각각의 우주에 번호를 부여하며 멀티버스를 적극 활용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세계관: 하나의 콘텐츠를 구성하고 있는 시간적・공간적 배경 혹은 장치, 서사를 통칭하는 말

 

만화를 통해 세계를 넓혀 나가던 멀티버스는 히어로 무비를 통해 할리우드에 등장했다. 하지만 이 유행에는 생산자의 상업적인 속내가 존재한다. 경남대 미디어영상학 장민지 교수는 “멀티버스는 기존 캐릭터의 서사를 분기별로 조금씩 변형해 무한한 이야기를 생성해 낼 수 있는 가능성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이는 곧 멀티버스가 서사 공간과 스토리텔링의 한계를 손쉽게 극복할 수 있는 장치라는 뜻이다. 캐릭터 설정도 자유로워, 기존에 성공한 캐릭터를 변형해 새로운 콘텐츠의 성공 확률을 높이기도 한다. 더불어 컴퓨터 그래픽의 발달로 구현 범위가 넓어지며 영화계는 너나 할 것 없이 멀티버스를 사용한 서사를 내놓았다.

 

물론 생산자의 이익만을 위해 멀티버스가 활용되는 것은 아니다. 콘텐츠를 소비하는 대중에게도 멀티버스는 다양한 재미 요소로 작용한다. 인기 캐릭터가 위기를 겪고 죽음을 맞이하더라도 멀티버스만 있다면 다시금 그 캐릭터를 만날 수 있다. 해당 캐릭터는 또 다른 우주에서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나아가 멀티버스는 익숙해진 소재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를 가장 잘 활용한 영화로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를 꼽을 수 있는데, 영화 속에선 인종이나 성별을 넘어 종족까지 다른 스파이더맨을 대중에게 제시한다. 소비자가 지닌 고정 관념을 부숴 흥미를 돋우는 과정이다.

 

멀티버스는 콘텐츠의 한계를 넘나들지만, 동시에 문제를 유발하기도 한다. 먼저 긴장감의 상실이다. 소재의 무한 확장은 다르게 말하면 서사의 완결이 불가능하며 무수한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뜻이다. 여기서 캐릭터는 유일성을 잃어 어떤 위험에 처하더라도 관객은 긴장하지 않는다. 또한 하나의 중심 세계관을 공유하더라도 각기 다른 연출가에 의해 만들어지는 영화의 특성상 서사 진행 중에 세계관 충돌이 발생하기 쉽다. 각각의 영화 모두가 다중 우주 중 하나로 여겨지기에 이 문제는 더욱 심각한 사안이다. 게다가 가상 세계인 동시에 여러 서사를 바탕으로 하다 보니 이를 제대로 이해하는 데에 피로감을 느끼는 대중도 있다. 때로는 멀티버스 세계관이 진입 장벽으로 작용한다는 의미다.

 

그럼에도 우리는 ‘나’와 ‘세상’을 바라보는 방법으로 멀티버스 콘텐츠가 필요하다. 무수히 많은 가능성의 세계를 간접적으로 경험하며 ‘나’에 관한 새로운 사실을 깨닫고, 세상을 보는 시야를 확장 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눈이 즐거운 애니메이션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와 익숙한 캐릭터들의 새로운 만남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 현실의 문제를 담은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비슷한 듯 전혀 다른 세 작품을 통해 멀티버스를 이해하고 또 다른 나를 발견하며 이전과 다른 세상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학기를 멀티버스 영화와 함께 보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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