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 빨대의 배신... 친환경으로 가는 길
종이 빨대의 배신... 친환경으로 가는 길
  • 오지웅 기자
  • 승인 2023.10.10 17: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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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친환경’을 위해 플라스틱 빨대 대신 종이 빨대를 사용하는 매장과 제품이 늘고 있다. 여러 프랜차이즈 카페부터 편의점 음료까지, 이제 종이 빨대는 어디서든 쉽게 볼 수 있다. 하지만 종이 빨대가 인체나 환경에 유해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와 논란이 일고 있다.

 

환경부의 1회용품 사용 제한 제도는 1994년 ‘일회용으로 제작된 컵, 접시, 용기 등의 사용 제한 권고’를 시작으로 점점 확대됐다. 작년 8월 환경부는 1회용품 사용 제한 확대를 발표하고 ‘1회용품 사용 줄이기 가이드라인’을 배포했다. 2022년 11월 24일부터 일회용 종이컵, 플라스틱 빨대와 젓는 막대 등이 사용 제한 품목에 추가되고, 식품 접객업 및 집단 급식소 매장 내에서의 사용이 제한됐다. 이에 종이 빨대가 플라스틱 빨대의 대안으로 제시됐다.

 

개정안 발표 후 1년간 참여형 계도기간*이 운영됐으며 오는 11월 24일에 계도기간이 만료된다. 기간 이후 카페 등의 식품 접객 업장 및 집단 급식소에서 일회용 플라스틱 빨대를 사용하거나 무상 제공하면 3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내야 한다.

*계도기간: 제도를 바꿀 때 사회의 혼란과 불이익을 막기 위해 행정 제재를 하지 않는 기간

 

하지만 최근 몇 년간 종이 빨대가 오히려 환경과 인체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고 있다. 2020년 미국환경보건국의 ‘폐기물 저감 모델’에 따르면, 플라스틱 빨대를 생산할 때보다 종이 빨대를 생산할 때 5.5배 많은 양의 탄소가 배출된다.

 

플라스틱 대체 기술을 연구하는 기업인 로리웨어(LOLIWARE)의 기후정책 책임자 카루나 라나는 “종이 빨대를 일반폐기물로 배출하면 에너지 소요량과 지구 온난화 잠재력이 플라스틱 빨대보다 크다”고 분석했다. 종이 빨대는 부피가 작고 이물질로 오염돼 재활용 현장에서 대부분 일반 쓰레기로 분류된다. 플라스틱 빨대보다 종이 빨대를 생산·폐기할 때가 환경에 더 많은 악영향을 주고 있는 것이다.

 

지난 8월 24일 벨기에 앤트워프대학 연구진이 자국에 유통되는 친환경 빨대 39개를 검사한 결과, 종이 빨대 18개에서 PFAS(과불화화합물)가 검출됐다. PFAS는 탄소와 불소의 결합으로 이뤄져 열과 오염에 강한 물질로, 연구진은 방수 코팅 때문에 종이 빨대에서 PFAS가 검출됐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PFAS는 자연적으로 잘 분해되지 않고 인체와 동식물, 환경에 유해해 ‘영원한 화학 물질’로 불린다. 또한 백신 효능 감소, 신생아 체중 저하, 갑상선 질환, 간 손상, 신장암 등과 같은 질환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연구를 맡은 티모 그로펜 교수는 “그 자체로는 해가 없을 미량의 PFAS라도 이미 체내에 존재하는 화학 물질에 대한 부하를 증가시킬 수 있다”고 밝혔다.

 

환경과 인체에 유해한 물질이 검출됐다는 소식에 국내 소비자 역시 불안감을 호소했다. 이에 국내 제지 업계는 서둘러 시험 성적서를 공개했다. 국내 종이 빨대 시장 점유율 70% 이상을 확보한 기업 서일은 “작년 4월에 이미 스위스 검사 기관인 SGS에서 PFAS뿐 아니라 60여 종의 유해 물질이 일절 함유되지 않았다는 성적서를 받았다”고 밝혔다. 한솥 제지 또한 “인체에 무해한 수성 아크릴계 코팅제를 사용하고 있다”며 유해 물질이 검출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국내 종이 빨대 제품에서는 유해 물질이 검출되지 않았지만, 종이 빨대에 대한 의구심과 불만은 여전하다. 카페에서 종이 빨대가 도입된 직후부터 소비자들은 꾸준히 “시간이 지나면 젖어서 흐물거리고 종이 맛이 난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최근에는 농심의 음료 카프리썬이 플라스틱 빨대를 종이 빨대로 교체하면서 빨대가 포장지를 뚫지 못하고 구부러져 불편을 겪은 소비자가 속출했다.

 

소비자뿐 아니라 업주들의 근심도 크다. 카페 업주들은 “종이 빨대에 대한 소비자들의 불만이 많고, 스무디같이 농도가 짙은 음료는 종이 빨대가 녹으면 잘 나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한 “플라스틱 빨대보다 종이 빨대의 단가가 2.5배 높아 금전적 부담도 크다”고 호소했다.

 

‘1회용품 사용 제한 계도기간’ 종료를 앞둔 지금, 종이 빨대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 환경 경책이 무분별한 빨대 사용을 줄이는 데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 않고, 종이 빨대 사용에만 주목한다는 지적도 존재한다. 친환경을 앞세운 종이 빨대가 플라스틱 빨대와 크게 다르지 않다면, 일회용 빨대 사용 자체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있다. 조금의 편의를 포기한다면 쓰레기 배출량 자체를 감소시킬 수 있다. 미래세대를 위해 무분별한 소비를 유발하는 일회용품 사용을 줄여 쓰레기·탄소 배출을 막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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