휠체어를 타면 콘서트를 볼 수 없나요?
휠체어를 타면 콘서트를 볼 수 없나요?
  • 박은진 기자
  • 승인 2023.10.10 17: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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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휠체어석 별도 예매제’ 도입과 휠체어석의 현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앞으로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리는 문화공연은 ‘휠체어석 별도 예매’를 진행해야만 대관 허가를 받을 수 있다. 올해 7월 서울시설공단이 새롭게 도입하겠다고 밝힌 ‘휠체어석 별도 예매’ 규정 때문이다. 서울시설공단은 왜 해당 규정을 도입하게 됐을까? 휠체어석 별도 예매가 문제화된 배경과 휠체어석 이용자들이 겪는 어려움을 알아보자.

 

작년 여름, 고척돔에서 공연 예정이었던 한 유명 아이돌의 콘서트 예매 공지가 논란에 휩싸이며 휠체어석 별도 예매의 필요성이 수면 위로 드러났다. 해당 공지가 논란이 된 이유는 휠체어석 별도 예매를 진행하지 않을 뿐더러 동반인의 표도 개인이 감당해야 했기 때문이다. 중앙일보와 인터뷰한 김지혜 씨 또한 일반석을 예매해서라도 콘서트에 가고 싶었지만, 장애인활동지원서비스*의 대상자였기에 동반인의 표를 부담하기 어려워 콘서트를 포기했다. 더구나 앞선 내용들은 콘서트 예매 공지에선 찾아볼 수 없었고, 전화 문의를 통해서만 알 수 있었다.

*장애인활동지원서비스: 신체장애로 혼자 일상・사회생활이 어려운 중증 장애인에게 제공하는 사회서비스

 

휠체어석 이용 시 금액 부담도 큰 문제다. 김지혜 씨의 사례처럼 활동지원사가 필요한 장애인은 대부분 동반인의 몫까지 관람료를 부담해야 한다. 물론 할인 제도를 시행하는 공연도 있다. 뮤지컬이나 연극의 경우 보통 30~50% 할인을 받을 수 있도록 하며 동반인 몫까지 할인해주는 경우도 있다. 할인이 법적 의무는 아니지만 동반인 몫을 다 부담한다면 적게는 20만 원에서, 많게는 30만 원까지 금액을 부담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이돌 콘서트는 ‘선예매’ 기간을 따로 두고 유료 팬클럽 가입자들에게만 예매 기회를 주기도 하는데, 이땐 티켓비와 더불어 팬클럽 가입 비용도 추가로 감당해야 한다.

 

금액 부담을 덜더라도 예매 방법과 좌석이라는 걸림돌이 존재한다. 대부분의 장애인석 예매는 전화로 이뤄진다. 배리어프리 소셜벤처** ‘배리어프리소플’의 이유정 대표는 “문의 전화가 몰리다 보니 예매를 위한 전화가 연결되기까지 20~30분씩 기다리기도 한다”고 전했다. 별도의 문의처가 아닌 예매처의 고객센터를 함께 이용하다 보니 발생하는 문제다. 좌석 선택의 자유도 제한된다. 좌석 배치를 미리 알 수 없는 경우가 많고, 휠체어석을 다른 용도로 사용하거나 시야 제한석에 설치하기도 한다. 고척스카이돔은 장애인관람석 38석과 동반인 좌석을 함께 운영하고 있지만, 이조차 운영처에서 사용하지 않는다면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소셜벤처: 사회적기업가 정신을 지닌 기업가가 기존과는 다른 혁신적인 기술이나 비즈니스 모델을 통해 사회적 가치와 경제적 가치를 동시에 창출하는 기업

 

장애인 이동권 콘텐츠 제작 협동조합 ‘무의(Muui)’의 조사에 따르면 2018년 기준 서울과 수도권 내 1천 석 이상의 공연장 21곳 중 휠체어석이 있는 곳은 △LG아트센터 △국립극장 △블루스퀘어 △상암월드컵경기장 등 11곳 뿐이다. 무의는 해당 조사표를 대형 예매사이트 3곳에 게시할 것을 요청했으나 옥션의 고객 문의 페이지에만 게시됐다. 그러나 2023년 9월 25일 기준 옥션 고객 문의 페이지에서도 해당 조사표는 찾아볼 수 없다. 5년 전의 자료가 마지막이고, 일부 조사되지 않은 공연장도 있으며, 직접 전화하지 않으면 휠체어석 현황을 알기 어렵다는 문제점도 있다.

 

옥션 사이트 캡처
옥션 사이트 캡처

해외에서는 장애친화 사례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영국은 2019년 영국예술위원회가 접근성 가이드라인을 제작해 배포했으며, ‘포용적 예술’을 위한 논의가 활발하다. 대부분의 극장은 홈페이지를 통해 편의시설에 관한 정보를 상세하게 제공하며 장애인 관객 안내를 전담하는 ‘접근성 안내원’이라는 전문 인력이 상주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미국 장애인법(ADA)에 휠체어석에 대한 규정이 구체적으로 나와 있으며 동반인 좌석과 시야 확보, 가격의 다양성, 편의 시설에 관한 내용까지 담고 있다. 미국 뉴욕시의 매디슨 스퀘어 가든은 휠체어석 외에도 해설 자막과 수어 통역사를 제공하고 청각 보조 장치도 구비해 두고 있는 등 장애 친화적인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한국의 법은 휠체어석 설치 의무만 규정할 뿐 운영에 관한 사항은 의무화되지 않았다.

 

한국의 이러한 실정에 휠체어 이용자들을 고려한 유연한 휠체어석 배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해외 극장 중에는 중앙 통로를 계단이 아닌 경사로로 만들어 휠체어 이용자도 선호하는 자리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사례가 있다. 혹은 가변형 좌석을 이용해 좌석 선택 폭을 넓히는 방법도 있다. 올해 키움히어로즈의 프로야구 경기에서는 휠체어석 동반 1인 무료 관람 제도를 시행했다. 이와 같은 변화는 향후 더 많은 권리가 보장되는 과정에 밑바탕이 될 긍정적인 출발이다.

 

드라마와 영화, K-POP까지 다양한 콘텐츠가 세계 무대에서 성공을 거두며 대한민국의 문화 위상은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소수자를 포용하는 모습은 아직 시작 단계에 머물러 있다. 문화 예술 향유의 권리가 모두에게 당연해지는 그날까지, 지속적인 관심 속에서 장애인 공연 관람 환경이 개선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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