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을 넘어선 두 남녀의 사랑과 대한독립의 꿈, 뮤지컬 '22년 2개월'
민족을 넘어선 두 남녀의 사랑과 대한독립의 꿈, 뮤지컬 '22년 2개월'
  • 최서현 기자
  • 승인 2023.11.09 2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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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 뜨거워지는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의 이야기
뮤지컬 22년 2개월 무대
뮤지컬 22년 2개월 무대

영화 <박열>(2017)을 통해 널리 알려진 독립운동가 박열 열사와 그의 연인 가네코 후미코의 이야기가 뮤지컬 <22년 2개월>로 탄생했다. 대학로 창작 뮤지컬 <아르토, 고흐>와 <광염 소나타>로 큰 인기몰이를 했던 음악감독 다미로의 손을 거쳤다. 작사, 작곡 뿐만 아니라 무려 7년의 기획 과정을 거쳐 그가 직접 극을 써냈다.

 

작품명 ‘22년 2개월’은 박열 열사가 실제 투옥했던 기간을 의미한다. 뮤지컬 <22년 2개월>은 두 사람의 재판 장면을 중심으로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의 과거를 넘나드는 플롯으로 구성됐다. 동경으로 향하는 배 안에서 부딪혀 서로 들고 있던 책이 바뀌게 되면서 박열과 가네코의 우연은 시작된다. 그 후 둘은 또 다른 우연에 이끌려 만남을 반복하게 되고, 박열이 쓴 시 ‘나는 개로소이다’를 접한 뒤 박열의 정신에 매료된 가네코 후미코는 그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M18. 베나 아모리스
M18. 베나 아모리스

박열은 불령사 동인들과 함께 일본 황태자를 폭탄으로 암살하려는 계획을 세운다. 그러나 그는 가네코와 사랑에 빠졌다는 사실이 황태자 암살 계획에 큰 걸림돌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 그녀를 떠나려 한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일본 관동대지진이 발생하고 지진의 혼란 속에서 서로의 사랑을 다시 확인하는 듯했으나, 결국 일본 정부와 시민 자경단에 의해 암살 계획이 적발되면서 박열과 가네코는 구속되고 만다.

 

뮤지컬 <22년 2개월>의 무대는 우리가 흔히 접하는 무대 구조물 방식으로 구성되지 않았다. 좌우 방향이 아니라 상하 수직 방향으로 움직이는 형태로 이뤄진 것이다. 보통의 뮤지컬과 달리 본 작품은 별도로 설치된 구조물이 무대 위아래로 열고 닫히며 막이 흘러간다. 이와 같이 수직으로 움직이는 무대 구조물은 작품 전체의 방향성을 암시한다. 박열의 심상 변화가 작품의 서사를 이끌어가는데, 박열의 의지와 사랑이 담긴 심상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더욱 단단해지며 샘솟는다. 이는 무대의 수직적 구조로 인해 더욱 돋보이고 강조된다.

 

M08. 그저 그런 하루
M08. 그저 그런 하루

수직적 움직임의 무대 구조와 작품의 전체적인 방향성은 핵심 넘버* ‘나는 개로소이다’에 또한 반영됐다. “높은 양반의 가랑이에서 뜨거운 것이 쏟아져 내가 목욕을 할 때”, “나도 그의 다리에다 뜨거운 줄기를 뿜어대는 나는 개로소이다.” 수직적인 표현이 잘 드러나는 가사가 돋보인다. 또한 ‘나는 개로소이다’ 넘버는 ‘나는 개새끼로소이다’ 리프라이즈 넘버**로 재구성돼 박열의 신념과 의지가 상승했음을 보여주며 작품의 방향성을 다시 한번 드러낸다.

*넘버: 뮤지컬에 등장하는 곡을 의미하는 용어

**리프라이즈(Rep.) 넘버: 하나의 극 중에서 특정한 넘버의 멜로디와 가사를 그대로 사용하거나 재구성해 만든 넘버

 

일본 측 예비판사 다테마스 가이세이, 박열과 가네코를 변호하는 일본인 변호사 후세 다츠지 두 인물 간의 대립 구도 또한 주목할 만한 지점이다. 침묵할 수 없다 외치는 후세 변호사와 침묵해야 할 시기라 말하는 다테마스 예비판사의 갈등은 서로 다른 의미를 담고 있는 ‘침묵’이라는 단어로 한데 모인다. 이 가운데 두 사람은 “정의는 반드시 살아있고, 난 그걸 지키고자 할 뿐이야”라고 동시에 외치며 상반된 침묵은 서로 다른 ‘정의’로 솟았음을 나타낸다.

 

뮤지컬 <22년 2개월>은 신념과 비애가 담긴 사랑, 침묵과 정의, 그리고 뜻을 이루고자 뭉친 힘찬 목소리가 극의 방향성과 잘 어우러져 뛰어난 작품성을 보여준다. 이 외에도 시대적 배경과 작품의 상징성이 잘 담긴 소품디자인, 가네코 후미코의 상징물인 나비의 움직임을 섬세히 표현한 영상디자인 등 수많은 요소들이 담겨 있다. 이러한 작품성을 통해 우리가 위대하게 여기는 독립운동가의 신념과 정신 또한 단지 한 사람의 가치와 뜻이 모여 솟구쳤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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