벡델데이가 필요 없는 그날까지, ‘벡델데이 2023’
벡델데이가 필요 없는 그날까지, ‘벡델데이 2023’
  • 박은진 기자
  • 승인 2023.11.22 16: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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벡델데이 2023 포스터, 출처 벡델데이 2023 공식 홈페이지
벡델데이 2023 포스터, 출처 벡델데이 2023 공식 홈페이지

한국영화감독조합(DGK)은 양성평등주간을 맞이해 9월 1일부터 3일까지 서울시 마포구에 위치한 인디스페이스에서 ‘벡델데이 2023’을 진행했다. 벡델데이는 2020년에 시작해 한국 영화 영상 미디어에서의 성평등 재현을 돌아보기 위해 매년 개최되고 있다.

 

‘벡델데이’란?

벡델데이는 미국의 만화가 앨리슨 벡델이 만든 ‘벡델 테스트’를 기반으로 하는 행사로 ▲영화 속에 이름을 가진 여성 캐릭터가 두 명 이상 나올 것 ▲여성 캐릭터가 서로 대화를 나눌 것 ▲그 대화 내용이 남성 캐릭터에 관한 것만이 아닐 것을 기본적인 질문으로 삼는다. 다만, 해당 기준은 미세한 성차별을 거르지 못한다는 점에 근거해 ▲감독·제작자·시나리오 작가·촬영감독 중 1명 이상이 여성 영화인일 것 ▲여성 단독 주인공 영화이거나 남성 주인공과 여성 주인공의 역할 비중이 동등할 것 ▲여성 캐릭터가 스테레오타입으로 재현되지 않을 것 ▲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차별적 시선을 담지 않을 것을 더해 ‘벡델데이’만의 벡델 테스트를 완성했다.

 

‘벡델데이 2023’은 △벡델초이스10 시리즈 부문 △벡델초이스10 영화 부문 △벡델리안 시리즈 부문 △벡델리안 영화 부문 총 4가지 부문을 심사하고 선정한다. ‘벡델초이스10’은 벡델 테스트에 부합하는 영화 중 성평등을 가장 훌륭하게 재현해 낸 작품을 엄선하는 부문으로 영화와 시리즈를 각각 10편씩 선정한다. ‘벡델리안’은 벡델초이스 작품들을 통해 성평등에 기여한 제작자, 배우, 감독(연출), 작가를 선정하는 부문이다. 이번 행사에서는 벡델초이스 작품을 상영하고 관객과 대화를 나누는 시간도 준비됐는데, 올해는 영화 <소울메이트>와 <유령>의 ‘관객과의 대화’ 프로그램이 진행됐다. 이러한 상영 관련 프로그램 외에도 직접 벡델리안과 만날 수 있는 △벡델리안 시상식 △벡델 토크 1, 2 등으로 본 행사를 꾸몄다.

 

현장에서 바라본 벡델데이

올해 벡델초이스 시리즈 부문은 5편만 선정했던 지난해와 달리 10편으로 규모를 확장했다. 더불어 장르의 다양성도 확대됐다. SF・정치드라마처럼 남성의 전유물로 여겨져 여성 중심 서사에서는 쉽게 볼 수 없었던 장르도 만날 수 있었다. 벡델초이스10 영화 부문에서는 작년보다 상업영화 선정작이 2편 늘어났다. 이화정 프로그래머는 이에 대해 “올해 선정된 작품들은 단순히 성평등한 영화라는 의미에만 머물지 않고 그 가치가 영화의 신선함을 보장하는 요소로 읽히며, 관객에게 사랑 또한 받은 작품들이라는 점에서도 고무적이다”라고 만족감을 드러냈다.

 

‘벡델 토크 #1 장르의 문법을 거스르는 여성들’을 통해 시리즈 부문의 벡델리안을 만났다. 올해 시리즈는 영화와 비교하여 벡델 테스트에 적합한 작품이 많았지만, 여전히 유해한 작품도 많기에 무해한 작품의 필요성을 절감했다는 것이 시리즈 부문의 총평이었다. 최근의 시리즈를 살펴보면 여성 캐릭터가 더 주체적이고 강해졌으며, 다양한 관계를 형성하는 추세로 변화했다. <슈룹>의 박바라 작가는 “시청자도 변화했기에 작가들이 용기 내 새로운 여성 캐릭터를 제작할 수 있었다”고 밝혔고, <박하경 여행기>의 이종필 감독은 “과거의 평면적인 해석과 달리 현실이 반영돼 여성 캐릭터의 다양한 관계성 표현이 가능해졌다”고 말했다. 특히 <슈룹>은 전형성을 벗어난 입체적이고 다양한 여성 캐릭터가 등장하는 현대 사회의 자화상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시리즈의 변화 양상을 잘 보여준 작품으로 꼽혔다.

 

이어서 진행된 ‘벡델 토크 #2 여성: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는 영화 부문의 벡델리안을 만나는 행사로, 지난해 벡델초이스에 선정됐던 <십개원의 미래>의 남궁선 감독이 진행을 맡았다. <길복순>의 변성현 감독은 “OTT나 독립영화 속에서는 다양한 여성 캐릭터가 보이지만 상업영화에서는 아직 잘 만들어지지 않고 있다”고 밝히며 상업영화의 한계를 지적했다. 이어 현실에서는 쉽게 볼 수 있는 여성상이 스크린에서는 낯설어지는 현상에 관한 이야기도 나눴다. 아울러 지금 영화계는 여성 배우들의 갈증과 경험, 능력이 빛을 보기 시작하는 추세라는 공통적인 의견도 알 수 있었다. 끝으로 이화정 프로그래머는 “벡델데이는 현재가 아닌 미래를 바라보기 위한 행사”라는 말과 함께 “벡델데이가 필요 없는 날까지 벡델데이를 진행하겠다”는 의지를 비쳤다.

 

성평등이 실현되는 날 벡델데이는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그 끝은 모두가 존중받는 사회를 위한 변화의 출발선이기도 하다. “신데렐라 스토리에서 여자 주인공이 신데렐라가 되길 거부한다면, 백마 탄 왕자도 백마에 내려와 함께 걸어야 한다”는 김민정 교수의 의견처럼, 벡델데이는 모든 변화의 시작이 될 행사이기도 하다. 한국 영화 영상 미디어의 미래, 그리고 미디어를 접하는 관객의 미래를 위해 향후 개최될 벡델데이는 더 큰 관심이 필요하다. 내년 행사는 풍부한 프로그램으로 많은 관객과 함께할 수 있길 바란다.

 

벡델데이 2023의 관객과의 만남, 벡델 토크 1・2 전체 영상은 ‘DGK한국영화감독조합’ 공식 유튜브에서 시청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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