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어나는 영어 메뉴판, 키오스크…다가오는 유리벽
늘어나는 영어 메뉴판, 키오스크…다가오는 유리벽
  • 김미정 기자
  • 승인 2023.11.29 03: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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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최근 편의와 인건비 절감을 이유로 키오스크가 확산하고 있다. 하지만 이와 함께 매장에 방문하고도 주문하지 못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키오스크 사용에 익숙하지 않은 고령층, 휠체어를 이용하는 지체 장애인이 키오스크의 터치스크린에 손이 닿지 않아 주문을 못하는 것이다. 시각 장애인 역시 음성 안내가 지원되지 않는 키오스크로 주문할 수 없고, 지적 장애인 역시 복잡한 키오스크 시스템을 이용하기 어렵다. 편의를 위해 도입된 키오스크가 취약계층을 만들어 매장을 이용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특정 대상의 이용을 불편하게 하는 서비스는 키오스크뿐만이 아니다. 카페에서는 한글이 적혀 있지 않은 영어 메뉴판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알아보기 어려운 필기체, 한국어 메뉴를 발음 그대로 영어 스펠링으로 옮겨 적은 메뉴가 가득해, 나이가 많거나 영어에 익숙하지 않은 손님들은 메뉴판을 보고도 메뉴를 파악하기 어렵다. 주문을 위해 무슨 메뉴인지 직원에게 일일이 물어봐야 하는 민망한 상황도 연출된다. 한 카페에서는 전 메뉴를 영어로 표기하고, ‘1인 1 메뉴’만 한글로 표기해 소비자들의 분노를 샀다. 고객이 원하는 정보는 제대로 제공하지 않으면서 매출과 직결된 내용만은 쉽게 알아보도록 적었다는 것이다.

 

키오스크와 영어 메뉴판 이용에 불편을 호소하는 이들이 공공장소를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다. 연령, 장애, 교육 수준 여부와 무관하게 다수가 이용하는 장소에서 주문조차 하지 못하는 실질적 차별로 이어진다는 지적이 다. 불특정 다수가 이용하는 공간이 ‘특정 다수’만이 이용할 수 있는 공간으로 변화하는 셈이다.

 

개선의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지난 3월 30일 ‘장애인차별금지법 시행령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시행되며 장애인과 비장애인에게 같은 시설과 서비스를 누릴 수 있도록 규정됐다. 이에 따라 키오스크는 장애인이 접근할 수 있는 위치에 휠체어 발판 및 점자 유도 블록을 설치하고, 음성 안내가 제공돼야 한다. 지난 9월 음성 키오스크를 도입한 한국 맥도날드 정영혁 상무는 음성 키오스크를 ‘장애인 고객 배려’가 아닌 ‘모든 손님의 편리한 이용’을 목적으로 도입했다고 밝혔다. 장애인과 비장애인 고객을 구분 짓지 않고, 모든 고객을 고려한 마케팅이 차별의 문턱을 낮춘 것이다.

 

영어 메뉴판이 불편하다는 지적에 지난 7월 16일 조명희 국민의힘 의원은 국어기본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여기엔 카페와 음식점 등 대중 이용 시설에서 한글 안내판 및 메뉴판을 의무 제공하도록 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키오스크와 영어 메뉴판은 이용자에게 경제적 효과, 편의, 가게에 어울리는 분위기 등을 제공하고자 마련된 것이다. 그러나 본 목적과는 달리 소수는 주문조차 할 수 없는 유리 벽에 부딪힌다. 보이지 않는 차별 지대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소수가 불편을 감내하는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선 배제되는 ‘소수’를 배려함이 아니라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모두’를 배려하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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