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무엇이고 어떻게 구현되는가?
정의, 무엇이고 어떻게 구현되는가?
  • 정병도
  • 승인 2024.01.04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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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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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삶 : 정의 물음의 출발점

얼마 전 동독의 비밀첩보 요원 이야기를 다룬 독일영화 ‘타인의 삶’이 반짝 화제가 되었다. 우리의 최고 국가권력 기관에 대한 동맹국의 도청 사실이 버젓이 공개되었기 때문이다. 이 영화에서 반체제 성향으로 분류된 인사를 도청하는 주인공은 국가권력의 비호 아래 그와 연인의 모든 사생활을 감시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영화가 진행되면서 주인공은 감시를 통해 그들의 삶에 더욱 가까이 다가갈수록 오히려 자신의 삶을 성찰하기 시작한다. 정의를 이야기하면서 이 영화를 언급하는 것은 일차적으로 ‘나와 공동체의 자유를 위해 타인의 자유를 침범하는 것이 과연 정의로운 일인가?’를 물으면서 동시에 ‘과연 정의란 무엇이고, 이 가치는 어떻게 구현될 수 있는가?’라는 본질적 물음으로 확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절대성 : 성경의 정의 이해  

오경에서 정의는 하느님 행위의 특성으로 제시되며 계약에 대한 충실성의 결과로 얻어진다. 따라서 여기서 정의란 하느님과 율법에 대한 충실성과 여기서 얻어지는 구원이며, 불의란 계약에의 불충이다. 나아가 신명기 신학은 정의-불의에 대한 상선벌악의 개념을 심화시킨다. 하지만 이스라엘의 역사 안에서 정의가 지닌 처음의 보상적 성격은 점차 옅어지고, 오히려 하느님의 사랑과 자애 그리고 구원의 의지로 변모해 나가는 모습을 보인다.

 

신약에 이르러 정의는 이 세상에 강생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분명하게 주제화된다. 그분은 가장 작고, 소외되고, 심지어는 죄에 가장 많이 노출된 이들에게 먼저 다가가시어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심으로써 정의를 드러내신다. 바오로 사도 역시 율법적이고 교조적인 정의 개념에 대항하여 하느님의 선하심으로 정의를 이해하고자 한다. (로마 5,17 참조) 

 

결론적으로 성경에서 정의는 언제나 하느님과 개인(또는 이스라엘 백성)의 관계 안에서 이해된다. 즉,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 형성과 유지 자체가 정의로 간주되며, 이를 벗어나는 인간의 이기심과 욕망은 불의한 것이 된다. 따라서 성경의 정의는 ‘절대적 특성’을 지니게 된다.

 

타자성 : 철학의 정의 이해

그렇다면 철학은 정의를 어떻게 다루는가? 플라톤은 정의를 ‘사회적이고 개인적인 인간이 행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덕’으로 이해한다. 이렇게 볼 때, 정의는 개인의 이성, 욕망 그리고 용기라는 인간을 구성하는 세 요소의 조화와 질서를 보존하는 데 도움이 되고, 최고선이자 궁극적인 목적으로 이해되는 εὐδαιμονία(에우다이모니아)를 가능케 하는 필수조건이 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의 이해는 오늘날 사람들에게 잘 알려져 있다. 그는 정의의 본질을 우선 ‘평등’으로 이해한다. 나아가 첫째, 모든 이가 동등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정치적이고 사법적 의미의 평균적 정의. 둘째, 사회의 일원으로서 개인이 짊어져야 하는 의무를 뜻하는 일반적 정의. 셋째, 개인의 능력과 사회공헌의 결과에 따라 대우받아야 한다는 사회경제적 측면에서의 배분적 정의로 세분화하여 이해한다.

 

성 토마스는 인간이 본성상 공동체를 이루어 살아야 하며, 그 사회생활에 필요한 필수적인 요소가 정의의 덕이라고 소개한다. 그는 신학대전에서 정의를 ‘각자에게 자신의 권리를 돌려주고자 하는 확고하고 항구한 의지’로 규정한다. 결국 철학적 지평 위에서 정의는 개인의 덕에서 출발하지만 타자와의 관계 안에서 규정되며, 언제나 공동체로 대표되는 ‘타자성’을 존중하도록 요청받는다.

 

공동체성 : 신앙과 정의  

오늘날 정의는 어떻게 이해되어야 하는가? 아렌트는 「책임과 판단」에서 정의의 조건으로 사유를 제시한다. 그녀에게 사유란 기본적으로 자신과 나누는 무성(Schweigen)의 대화이고, 멈추어 생각하는 과정이기에 필연적으로 불의를 거부하게 만든다. 결국 그녀에게 정의는 사유와 판단 그리고 책임의 결과물이다. 이렇게 볼 때, 신앙인의 사유는 하느님 가치를 따르는 ‘신앙 행위’와 ‘책임감 있는 삶의 자세’로 구체화되며, 정의로운 삶을 가능하게 만들어준다. 

 

한편, 하느님께서는 창조를 통해 세상에 질서를 부여하셨고, 피조물을 다스릴 권한을 인간에게 부여하셨다. 인간은 자신의 행위에 막중한 책임감을 부여받았으며, 창조원리를 내면화하는 사유 과정을 통해 판단해야 할 의무를 지니게 되었다. 그리고 이런 전체적인 과정에서 인간의 정의가 구체화된다. 따라서 정의는 단순히 개인의 차원이 아니라, 일차적으로는 타인과의 관계성 안에서 그리고 나아가서는 모든 피조물이 이루는 공동체성 안에서 이해되어야 한다는 앞선 관점과 자연스럽게 만나게 된다.

 

새-일상성 : 정의 실현의 새로운 지평 

우리는 묻는다. ‘과연 정의는 실현될 수 있는가?’ 우리는 답한다. 정의는 하느님의 질서가 올바로 작동하는 가운데 실현되며, 또한 책임감 있는 정의 실현의 주체가 될 때 비로소 완성된다! 이제 우리는 묻는다. ‘어떤 방식을 통해 정의가 실현될 수 있는가?’ 그 출발점은 다름 아닌 ‘일상성에 대한 새로운 자각’이다. 이것은 “나의 평온한 일상 가운데에도 여전히 불의한 것이 있다는 인정”을 뜻한다. 곧, 내 주변의 모든 것이 질서 있게 유지되는데도, 여전히 ‘정의의 실현’이 언급된다면, 나를 둘러싼 이 공동체 안에 ‘여전히 불의가 만연’한 것이고 질서의 혼돈이 남아 있다는 반증이다. 따라서 정의의 실현은 이 소리에 귀 기울이고, 나, 타인, 모든 피조물로 확장된 시선 안에서 질서를 회복하는 것이다. “너희가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주지 않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주지 않은 것이다.”(마태 25,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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