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사그라든 야구 여신의 꿈
<초점>사그라든 야구 여신의 꿈
  • 채치영 기자
  • 승인 2011.11.23 16:27
  • 호수 2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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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 스포츠와 여성 언론인
▲ 출처_<교수신문>

 야구여신이 죽었다. 그녀는 지난 달 23일 자신이 살던 오피스텔에서 투신했다. 지난 달 7일 개인 미니홈피에 두산베어스 투수 임태훈 선수와의 적나라한 사생활 공개를 필두로 트위터 자살 소동, 전 남자친구와의 공방전 등 야구여신의 사생활은 낱낱이 공개되었다. 본교 출신의 MBC 스포츠 플러스 아나운서 고(故) 송지선 씨의 얘기다.  진실공방은 여전하다. 송 아나운서에게 쏠렸던 비난이 임 선수에게 전이됐을 뿐이다. 송 아나운서의 자살원인은 자세히 밝혀지지 않았으나 임 선수와의 연애문제가 발단이 된 듯하다. 그녀는 자살 직전‘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임선수와의 교제사실을 인정했으나 임 선수는 구단을 통해 교제사실을 부인했다.

벗기기 경쟁
 지난해는 스포츠 전문 여성 아나운서의‘춘추전국시대’였다. 송 아나운서 역시 이때부터 미녀 스포츠 전문 아나운서로 이름을 날렸다. 여성 스포츠 아나운서에게 야구 전문프로그램을 통째로 맡기기 시작한 것은 2009년‘KBS N 스포츠’에서 시작됐다. 김석류 전 아나운서가 진행했던‘아이 러브 베이스볼’은 케이블 프로그램으로는 높은 시청률인 1%를 기록했다. 스포츠는 남자의 전유물이라는 인식을 뒤엎은KBS의 전략이 성공하자‘MBC 스포츠 플러스’에서는 송지선∙김민아 여성 아나운서를 간판으로 내건‘베이스 볼 투나잇 야(􃏧)’를 선보였다.‘SBS ESPN’역시 이에 질세라 슈퍼모델 출신 배지현 아나운서를 기용했다.

 여성 스포츠 아나운서의 기용은‘야구 하이라이트 프로그램’의 치열한 시청률 경쟁으로 이어졌다. 각 방송사들은 시청률 재미를 보기 위해 경쟁사보다 더 자극적인 영상을 갈망했다. 결론은‘벗기기’였다. 방송사는 여성 스포츠 아나운서의 치마를 더욱 짧게 입혔다. 포털사이트에 스포츠 전문 아나운서의 이름을 검색해보자. 연관검색어에는‘팬티’,‘ 노출’,‘ 가슴’등이 그들의 이름 옆을 장식한다. 시구를 하러 가는 아나운서의 옷차림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푹 파인 가슴골과 짧은 미니스커트는 시청자들의 눈을 사
로잡기 충분했다. 그렇게 방송사는 시청률을 높였다.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야구를 즐겨보는 한 시청자는“처음에는 여성 진행자들이 테이블을 앞에 세우고 진행했지만 조금 지나서 이 테이블을 치웠고, 이어서 몸에 딱 붙는 짧은 원피스, 혹은 치마를 입게 한 채 다리가 긴 높은 의자에 앉혔다”고 말했다. 이 시청자는“사실 야구를 좋아해서 보긴 하지만, 그런 모습을 보고 있으면 아슬아슬한 기분이 드
는 것도 사실이다”라고 했다.

 송 아나운서 역시 남성 잡지의 커버걸로 등장하여 눈길을 끌었다. 김민아 아나운서와 함께 찍은 이 화보에서 송 아나운서는 기존의‘아나운서’에게서는 볼 수 없는 파격적인 노출을 시도했다. 아나운서로서 품위를 떨어뜨렸다는 누리꾼들의 악플도 있었지만, 남성 시청자들의 사랑을 한 몸에 얻으며‘베이스 볼 투나잇 야(􃏧)’를 인기 프로그램 선상에 올렸다.


이곳은 너무도 폭력적
 송 아나운서의 죽음 이후 동료였던 이지윤 전 아나운서의 과거 글이 화제였다.“ 스포츠라는 견고한 바운더리 안에서 쏟아지는 스포트라이트에 취해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허우적대는 것, 여성 스포츠 아나운서의 현재 모습이다. 스포츠에 대한 애정보다 치마 길이에 더 신경을 쓰고 있다면, 제발 아서라. (중략) 여전히 이곳은 여성에게 너무도 폭력적
인 곳이다”

 송 아나운서의 꿈은 스포츠 생중계를 맡는 것이었다. 그녀는 <교수신문>과의 인터뷰에서“‘스포츠 중계=송지선’이라는 인식을 심어주고 싶다”는 포부를 밝힌 바 있다. 그녀라면 충분히 해낼 수 있었을 꿈이었기에 더욱 애달프게 느껴진다. 정확히 그녀를 죽음으로 이르게 한 원인은 알 수 없다. 개인사나 우울증과 같은 질병에 의한 선택이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방송에서 보여준 그녀의 모습은 철저하게‘상품화’되어 있었다. 예쁜 인형처럼 방송사의 입맛에 맞게 옷을 갈아입어야 했다. 프로그램의 시청률을 높이기 위해 야한 포즈로 사진을 찍어야 했으며, 스캔들로 인한 악플을 감수하면서 까지 선수들가의 친분을 유지해야 했다.

 이지윤 전 아나운서의 글을 보면 화려하게만 보이는 스포츠 전문 아나운서의 비애가 느껴진다. 외모지상주의, 성 상품화 등 모든 차별적 요소가 집결되어 있는 방송국에서 제2의 송지선이 나오지 않는 날은 언제쯤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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