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감일기> 나방 목숨
<마감일기> 나방 목숨
  • 허좋은 기자
  • 승인 2011.11.23 16:32
  • 호수 2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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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감 날 늦은 밤까지 기사를 쓸 때 귀찮게 하는 친구가 있다. 혐오스럽게 생긴 이 친구, 어느 틈새로 들어왔는지 유유히 돌아다닌다. 누군가는 그를 보고 소리 지르고, 누군가는 이 모든 상황이 귀찮다는 듯 무심하게 잡아 죽인다. 매일같이 보아 친숙할 법도 하지만 어두운 밤 범죄자라도 만난 마냥 피하기 바쁜 이 친구의 이름은 나방이다.

 지난 봄 이사한 학보사의 터가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온갖 스트레스가 쌓인 때 이리저리 피하는 나방을 쫓다 문득 창문을 바라보았다. 마리아관 3층 끄트머리에 위치한 학보사 창문은 수 그루의 나무와 마주하고 있다. 녹음이 우거진 여름이라 길게 뻗은 가지와 잎사귀가 창문을 뚫을 것 같이 맞닿은 곳도 있었다. 풀과 나무가 있는 곳엔 벌레가 있기 마련이다. 순간 그린캠퍼스가 자랑하는 녹지에 대한 욕지거리가 튀어나온다.

 무의식중에 존재하는 인간중심의 이기적인 사고가 욕과 함께 튀어나왔다. 봄이면 으레 찾아오는 황사가 황량한 내몽골 사막에서 비롯된 것에 자국 환경 관리도 못하는 중국에 분노한다. 세계의 허파 아마존 삼림이 한 달에 여의도 면적 몇 배씩 파괴된다는 뉴스에도 분노한다. 도시 속 편리함과 풍부한 사회 기반시설을 누리며 환경 문제는 멀다고 생각했었다.

 최근 들어 눈에 띄는 환경변화로 잦은 불쾌감을 느낀다. 매년 예년보다 강력해지는 찜통더위에 에어컨을 켠다. 높은 전력 소모를 자랑하는 에어컨 사용은 과도한 화석연료 사용과 탄소 배출로 이어져 기후변화를 일으킨다. 알지만 나의 편리가 우선이다. 도심 속 작은 생물 역시 원래의 터전인 곳을 인간의 욕망에 빼앗겨 계속 배회하는지 모른다. 나무만 볼 때는 나무가 문제다. 인간이 숲에서 총체적 문제와 살에 닿는 나무의 문제 원인을 파악해야 한다. 원인은 결국 인간, 나에게 있다.

 문제를 느끼고 분석하면 대책을 세워야 한다. 인간이 벌레와 다른 점이다. 해결책은 편리를 일정부분 포기하는 것이다. 편리를 계속 고집한다면 내가 몇 분전 잡은 벌레와 같은 운명이 될 수 있다. 나방은 아주 가까이 위협이 왔을 때야 느끼고 도망간다. 아직은 속도가 느리다. 그림자가 다가선다. 벌레는 죽음의 그림자가 아주 가까이 왔을 때 위기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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