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복지’논쟁과 학생을 위한 대학정책
‘서민복지’논쟁과 학생을 위한 대학정책
  • 사설위원회
  • 승인 2009.11.11 19:28
  • 호수 19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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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B.C. 134년 로마 호민관에 당선된 티베리우스 그라쿠스가 서민복지관련 법으로 ‘농지개혁법’을, 10년 후 동생 가이우스 그라쿠스가 ‘곡물법’을 제출한 것이 왕의 자비에 의한 복지가 아닌 최초의 법적 복지정책의 실현이다. 두 법안은 서민생활에 있어서 국가의 책임을 명시하고 저소득층에 대한 관심이 국가통치에 핵심적 요소라는 것을 후세까지 전달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 후 모든 복지제도는 누가 어떤 목적으로 실행했던 ‘서민복지’가 아닌 것이 없다. 다만 후세가 그 평가를 어떻게 하는가에 따라 서민복지의 진정성과 정치성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서민들이 체감하지 못하는‘서민복지’를 단지 실행하는 것과 체감하도록 만드는 정책을 실행하는 것에는 큰 차이가 존재한다.

단기간 서민복지에 대한 진정성을 가늠할 수 있는 중요 지표로는 정부의 복지분야예산지출액을 들 수 있다. 현재 논의 중인 내년 정부의 예산액 3백조 원 내외 중 복지분야의 예산은 서민복지의 표방 속에서도 일부만 증가하였다. 그 증가분도 크게 국민연금이나 건강보험과 같은 사회보험제도의 자연 증가분과, 논란이 되고 있는 보금자리주택지원과 희망근로프로젝트 연장에 집중되어있다. 오히려 실제 사회복지서비스 예산은 감소되었다고 볼 수 있다.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지는 않더라도 저소득층에 대한 서비스 예산을 삭감하면서 ‘서민복지’를 주장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이유는 단 한 가지, 국가재정의 안정성 때문이라는 것이다. 2100여 년 전 그라쿠스의 형제의 법들 역시 서민들에게 어떠한 구체적 도움을 주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다만 그 형제들의 갑작스런 죽음 이후 등장한 보수파 술라 정권이 국가 재정안정성을 표방하고 40여 년 간 복지정책의 일환으로 시행된 곡물법을 폐지하였기 때문에, 이전의 그라쿠스 형제의 법들에 서민복지의 진정성이 있다고 후세가 평가하는 것이다.

현 정부가 정말 국가재정의 안정성을 걱정하는 지도 의심스럽다. ‘서민복지’의 일환으로 제시된 ‘학자금 후불제도’가 그렇다. 기존에는 저소득층에게 연간 450만원의 등록금이 무상지원되고, 이자지원도 가능했지만 이번 제도에서는 등록금은 취업 후에 갚아야 하는 대출로 바뀌었고 이자지원도 삭감되었다. 기존의 학자금 대출제도에서는 학생들의 노력으로 대학과 지자체에서 재학 중의 대출이자를 갚아주는 사례가 있었으나 이번 정책에서는 돈을 갚을 때까지 이자가 쌓이고, 이자와 원금 모두 취업 후에 본인이 부담해야함으로 인해, 취업 후 개인적 빈곤층이 늘어날 수 있다. 특히 취업이 불안한 현재 상태에서 대출금 미회수율이 증가한다면 향후 국가재정의 안정성을 위협하는 제도가 되고 말 것이다.

서민복지를 표방하지 않는 정부가 없듯이 학생복지를 소홀히 다루려고 하는 학교도 없다. 마찬가지로 문제는 그 정책의 대상자들이 어떻게 느끼는가 하는 점이다. 현재 ‘서민복지’관련 논의들을 거울삼아 학생들이 진정으로 체감하는 대학정책의 실행을 위해 학교와 교수들이 서로 노력할 때 비로소 인간존중의 학교가 실현될 것이다. 구체적 내실을 다지는 정책보다 거창한 비전만 제시한다면 현재 구성원의 신뢰와 애정은 점점 식어가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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