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시 - 우수> 삶의 노래
<산문시 - 우수> 삶의 노래
  • 이석민
  • 승인 2012.11.30 04:54
  • 호수 2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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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을 나는 내 눈으로 본다. 내 온 몸이 그들을 느낀다. 나는 시간이 존재한다는 것을 안다. 시침 분침이 없어도. 나는 삶이 존재한다는 것을 안다. 죽지 않아도. 내 속을 흐르는 따뜻한 피를 알고 내 겉을 쓰다듬는 바람의 숨결을 안다.
일 년 전, 옛 친구를 만나 그들이 존재하는 곳에 내려 앉았다. 그들은 나를 보았다. 아무것도 비추지 않는 우물 같은 그 눈들. 거기 삶이 있던가 아니면 죽음이 있던가. 아니 죽음도 삶도 거기엔 없었다. 신도림역 휠체어용 에스컬레이터가 요란스런 소리를 내며 내려온다. 나는 그들의 저주를 온 몸으로 감내한다. 그들은 그들의 우물에 나를 담으려 한다. 핏기어린 냉동 고기처럼. 하지만 나는 그들의 우물을 똑바로 직시한다. 그러면 그들은 도망치듯 고개를 돌린다. 그들 머리에서 어떤 생각들이 스치는지 알 수 없다. 생각이라는 것을 하기는 할까. 무감각하게 앞만 바라보며 걷는 기계들. 그들에게서 기름 냄새가 난다. 심장에 구를 대보고 싶다. 뛰기는 하려는지. 내가 내딛으면 펄쩍 뛰며 물러서겠지. 그들에겐 용기가 없으니. 죽음과 고통을 마주할 피와 살이 없으니. 하지만 그럴 때마다 나는 더욱 가까이 그들 곁에 가 서고자 한다. 죽음을 알아야 살아 있음을 알고 고통을 알아야 평화를 안다. 나는 선생으로 가르쳐 주고 싶은 것이다!
그래. 신은 그들에게 혀를 주었다. 그러나 그들은 말을 않는다. 신은 그들에게 발을 주었다. 그러나 그들은 걷지 않는다. 신은 그들에게 머리를 주었다. 그러나 그들은 생각을 않는다. 무엇 하나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다. 신이 준 모든 것을 가지고도 애니팡이나 하는 꼴이라니! 지금 나는 작은 한숨 내쉬고는 여기에 다시 돌아와 있다. 이 곳은 삶의 정수들로 가득 차 있다. 나와 같은 얼굴들 안에 별처럼 반짝이는 눈들이 아로새겨져 있다. 처음에 나는 신을 저주했다. 그러나 지금은 행성같이 감싸는 그의 사랑을 느낀다. 왜냐하면 나는 저 해가 뜨고 해가 지는 것을 보는 것이다. 달과 별과 눈들이 빛나는 것을 본다. 나는 본다. 살아있음이 나와 그들을 잇는다.
두 손을 모으고 나는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오롯이 내게만 허락된 전율하는 삶에 대하여.

수상소감

이석민(프랑스어문화·3)

 뭔가 써야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시험 끝나고 이주일간은 늘 무언가 썼던 기억밖엔 없다. 재능 없는 나에게 이 상은, 그런 노력에 내려진 상이 아닌가 생각을 한다. 다시 한번 상을 주신 모든 사람들에 감사를 전한다.
 시라는 건 일종의 연극과 같다. 시를 쓰는 사람은 나무가 되기도 시커먼 밤하늘이 되기도 수천 광년 떨어져 있는 별이 되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이 시를 쓰기로 작정하며 한센병을 온 몸으로 내리받았다. 그리고 나서 세상을 보았을 때 세상은 달라져 있었다. 실제로 시를 쓰던 언젠가 나는 신도림역 플랫폼에 서서 보았다. 지나가는 이들의 핏기없는 얼굴, 텅 빈 눈과 메마른 입술. 살고자 하는 염원 없는 그 입가엔 기름이 묻어 있었다.
 우린 모두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다. 그런데 우린 마치 영원한 삶에 지친 그리스 신들처럼 매일을 살아가고 있다. 그렇다. 말 그대로 모든 것을 가지고도 애니팡이나 하는 당신은 모를 것이다. 온 손 끝과, 발 끝으로 生을 느끼고자 하는 염원이 무엇인지를. 고통과 상실이 무엇인지를 그래서! 生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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