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의 입이 트이지 않는 이유
학생들의 입이 트이지 않는 이유
  • 허좋은 기자
  • 승인 2009.11.18 10:43
  • 호수 2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009 대학강의의현실

이달 초 일부 학생들 사이에서‘곰아저씨’라는 별명으로 알려진 정성민(사회복지∙3) 학생이‘가톨릭대에좋아하는사람이있다면(이하 가좋사)’에서 화제가 되었다. 모 중핵교양 시간, 판타지 문학 작품《드래곤 라자》를 주제로 한 발표에서 정 학생이 종이로 싼 칼에 불을 붙이는 퍼포먼스를 했다는 내용의 게시물이 올라온 것이다. 이에 대해 학생들은 발표에서 받은 인상부터, 평소 정 학생에 대한 문제 제기, 인신공격 등 다양한 반응이 50여개의 댓글로 나타났다.
정 학생은 이에 대해“교수님께서 다양한 형식의 발표를 해도 좋다고 했으며 불을 사용하는 문제도 허락을 받았다”며 이 사건이 화제가 된 원인은 다른 곳에 있다고 했다. 그는“1학년 학생들이 강의 중 대놓고 딴 짓을 하거나 자는 모습과 발표 중 어디선가 베껴온 내용을 그대로 읽고 질문에 답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고 거칠고 직접적인 지적을 했던 것에 대해 학생들이 반감을 가진 것”이라고 주장했다.

학생 참여 수업에서 학생은 능동적인가
대학을 굳이‘진리 탐구의 전당이자 상아탑’이라는 고전적 정의를 들이대지 않아도 정 학생이 지적한, 우리에게 익숙한 강의실 풍경에 문제의식을 가질 만하다. 특히 아직 교사의 일방적인 수업에 익숙한 1학년의 경우 수동적으로 수업에 임하는 경우가 많다. 황윤영(국제학부∙1) 학생은“교수님이 직접 시켜야만 대답하고 그 외에는 교수님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며 강의실 풍경을 전했다.
대학 강의는 교수가 일방적으로 학문을 가르치는 것 뿐 아니라 학생이 능동적으로 강의에 참여 할 때 의미 있는 결과를 낳는다. 동양대 최현규 교수는 올해 5월 25일자 <한국대학신문>과의 인터뷰에서“딱딱한 주입식 강의는 학생들에게 전공에 대한 흥미를 잃게 하지만 교수와 학생이 소통하는 토론식 강의에서는 강의만족도가 더욱 높
게 나타난다”며 교수-학생 간의 소통이 있는 강의의 장점을 설명했다. 이런 능동적인 강의 형태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나타날 수 있다. 가장 일반적으로 학생이 교수에게 질문을 제기하는 것을 들 수 있다. 질문은 강의에 대한 이해도를 교수에게 확인시킬 수 있고 교수와 학생 사이의 커뮤
니케이션을 가능케 한다.
또한 발표∙토론 수업 역시 학생들의 능동적인 수업 참여의 좋은 예다. 해당 발표를 맡은 학생들이 그 분야에 대해 공부하고 다른 학생들 앞에서 발표를 한 후 그 주제를 놓고 토론을 하는 것이야 말로 학생들이 가장 능동적으로 수업에 참여하는방법이다. 그러나 여기에도 문제가 있다. 본교 중핵교양 강의 중 발표 수업을 진행하고 있는 최주은(가명) 강사는“(발표하는)학생이 준비를 잘해야 하는데, 준비가 안 되면 시간이 아깝게 된다”고 밝혔다. 또한 일부 발표 수업에서 학생의 질문을 수업 참여 점수로 반영함에 따른 문제도 있다. 다른 중핵교양 강의를 진행 중인 한정연(가명) 강사는“발표 내용에 대한 냉철한 비판을 담아 발표자를 당혹시키는 질문이 좋은 질문”이나“성적에 반영되기 때문에 형식적으로 질문을 하는 학생이 간혹 있다”며 지적했다. 또한 본교의 대표적인 발표∙토론 수업인 CAPⅡ에 대한 문제점도 지적된다. 문정윤(가명, 종교∙3) 학생은“아무래도 CAPⅡ 수업을 조별 활동으로 하다 보니 모든 학생들이 다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며 조별 과제에 대한 무임승차 문제도 제기했다.

우리는 수업에 능동적으로 참여할 권리가 있다
그러나 이 문제의 근본적 원인을 단순히 소극적인 학생의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대학 강의를 처음 접하는 신입생에게 길게는 12년, 짧게 보아도 고등학교 3년간의 습관이 너무 익숙하다. 황 학생은“중∙고등학교 때부터 익숙해져 있기 때문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이처럼 학생들은 이미 대학 입시라는 틀에 맞춰져 교사가 일방적으
로 학생에게 지식을 전하는 주입식 교육에 길들여져 있다. 이런 학생들이 한 순간에 대학 강의에 적응할 수 없는 노릇이다. 사실 수업에 대한 능동적 참여가 대학만의 전유물이라고 할 수도 없다. 간혹 언론을 통해 들려오는 서구의 초∙중등 교육의 토론식 수업을 보면 우리도 초∙중∙고교 시기부터 학생이 중심이 된 참여 수업을 못 할 것도 없다. 수업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것은 학생의 권리다. 그것을 효율적인 입시 교육을 위해 공교육에서 시행하지 못하는 것은 학생들에게 큰 불행이다. 그러나 현재의 공교육은 이를 역행하는 듯한‘일제고사’‘, 국제중, 자사고확대로인한중∙고교 입시 부활 논란’을 볼 때 우려스럽다. 앞으로도 권리가 박탈당하는 것이 익숙한 대학생이 강의실에 늘어날 것 같다.
<허좋은 기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