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경] 레고랜드 사태 ① : 사태 경위 & 채권 시장
[생경] 레고랜드 사태 ① : 사태 경위 & 채권 시장
  • 황성진 기자
  • 승인 2022.10.30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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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경’은 근래의 생생하지만 낯선 경제 시사를 이해하기 쉽게 풀어내는 코너입니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지난 9월 27일 강원도가 강원중도개발공사의 채권 상환을 거부하고, 기업회생을 신청했다. 이러한 '레고랜드 사태'가 시발점이 되어 국내 경제 악화가 가속화되고 있다.

 

강원중도개발공사(이하 강원공사)는 레고랜드의 건설을 위해 조직된 시행사로, 강원도는 44%의 지분을 갖는 강원공사의 최대 주주다. 건설, 사회기반시설 등 큰 초기 자본이 필요한 사업은 통상적으로 채권 발행을 통해 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한다. 채권은 만기일에 이자와 원금을 합한 금액을 지급한다는 내용을 담은 유가증권이다. 채권의 일종인 기업어음은 채무자의 상환능력에 따라 A1부터 D6까지 등급이 매겨진다. 강원공사에서 발행한 채권 2,050억(연 금리 4.8%)은 강원도가 지급보증을 섰기 때문에 우수한 상환능력을 지녔다고 판단돼 A1 등급을 부여받았다.

 

채권 만기 9일 전인 9월 20일 강원공사는 보유자산을 전부 매각해도 412억 가량의 손실액이 존재한다고 강원도에 보고했다. 9월 28일 강원도는 손실액을 제외하더라도 강원공사의 자산 매각의 진행도가 낮고, 진행 중인 자산 매각도 신뢰할 수 없다고 판단하여 지급보증을 이행하지 않고 기업회생 신청 계획을 발표했다. 기업회생이 승인되면 채권자들은 15%의 채무만 상환받을 수 있고 나머지 85%의 채무는 주식을 통해서 받게 된다. 부도가 난 채권의 주식은 시장에서 제 값을 받기 어렵다. 게다가 거대하고 전문적인 경영 주체에서 개인과 기관으로 주식이 이양되며, 사실상 주식이 경영권 실현의 수단으로서 온전히 기능을 발휘하기도 어려워진다. 결국 10월 5일 해당 채권의 특수목적법인 아이원제일차는 최종 부도 처리됐다.

 

한국에서는 지역 간 세수* 불균형으로 인해 지방정부 자체의 자본만으로 사업을 진행하기가 어렵다. 이에 지방정부는 자본을 조달하기 위해 지방채를 발급하고, 중앙정부는 지방채를 사들여 간접적으로 지방정부에 자금을 공급한다. 따라서, 국가적 재난 등 중앙정부의 재정에 이상이 발생하지 않는 한 지방정부가 모라토리엄**을 선언하더라도 중앙정부가 대신 지방채를 상환해줄 것이라는 믿음이 존재하기 때문에 지방정부의 채권은 국고채에 준하는 취급을 받는다.

* 세수 : 조세 수입
** 모라토리엄 : 국가의 공권력에 의해서 일정기간 채무의 이행을 연기 또는 유예하는 일

 

이번 강원공사의 채권도 국고채에 준하는 믿음이 시장에서 담보되었지만, 돌연 강원도가 지급보증을 거부하면서 채권 시장 전반의 신용등급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게 됐다. ‘레고랜드 사태’의 금액은 채권 시장 전체에서 볼 때 적은 수준이지만, 채권 시장 자금 공급 축소에 영향을 미친 것은 채권 중 가장 안전하다고 평가된 지방채가 부도났기 때문이다. 채권 시장이 축소되면 흑자 기업이 단기 자본을 조달하지 못해 부도가 나는 흑자도산의 위험이 생기며, 채권 발행을 통해 실현 가능했던 사업이 불가능하게 되는 등의 국민 경제 위축의 우려가 생긴다.

 

출처 한민 외 2인, 최근 신용채권시장 상황 평가:신용스프레드 확대요인을 중심으로, 한국은행 BOK 이슈노트 제2022-42호
출처 한민 외 2인, 최근 신용채권시장 상황 평가: 신용스프레드 확대요인을 중심으로, 한국은행 BOK 이슈노트 제2022-42호

신용 스프레드는 국고채와 기업채의 금리 차이다. 기업채는 국고채에 비해 위험성이 크기 때문에 신용 프리미엄이 붙어 금리가 높게 표시된다. 신용 스프레드는 경기지표로 사용되기도 하는데 경기가 호황일 때는 신용 스프레드가 축소되고, 경기가 불황일 때는 신용 스프레드가 확장된다. 지난 20일 한국은행 금융시장국 채권시장팀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회사채(AA-)의 신용 스프레드는 114bp***, 카드채(AA)의 신용 스프레드는 152bp로 나타났다. 이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고 수치로, 민간 채권의 지급 능력과 신용 신뢰가 심각한 수준으로 낮아졌다는 뜻이다.

*** 1bp : 0.01%p

 

채권 시장은 현재 이른 겨울을 혹독하게 맞이하고 있다. 시장 규모가 축소되었을 뿐만 아니라, 남은 자금마저도 한국전력공사(이하 한전)의 기업채와 은행채가 흡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레고랜드 사태 이전에도 한전은 연간 30조 원의 적자를 해소하기 위해 채권을 발행해왔다. 지난 4일에는 3,800억 규모의 회사채를 2년물**** 금리 5.5%, 3년물 5.6%, 5년물 5.62%로 발행하기도 했다. 채권의 일종인 회사채는 기업어음과 유사하게 채무자의 상환능력에 따라 AAA에서 D까지 등급이 매겨진다. 한전의 회사채는 AAA 등급으로, 공기업에서 발행한 것이기 때문에 사실상 국공채의 취급을 받는다. 한전이 신용등급 대비 높은 금리의 채권을 막대한 규모로 발행하며, 투자 펀드들이 안정성과 수익성을 모두 챙기기 위해 펀드의 채권 비중을 한전채로 채우는 등 채권 시장의 자본이 한전으로 몰렸다. 이에 AA-등급의 일반적인 회사채들은 이보다 더 높은 수준의 금리를 지불하고도 채권을 발행하기가 더욱 어려워졌다.

**** N년물 : N년 후 만기일이 도래하는 채권

 

채권 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지 못한 기업들은 회사채의 금리보다 더욱 높은 금리를 지불하고 은행 대출을 통해 자금을 마련해야 한다. 은행은 이윤을 늘리기 위해 최대한 많은 자본을 모아, 기업에게 높은 금리로 대출해주려고 한다. 이에 은행은 늘어난 기업 대출 수요에 대해 유동성과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서 은행채를 발행하는데, 이때의 은행채는 신용등급 대비 높은 금리로 발행된다. 이처럼 높은 등급에 높은 금리를 가진 채권들은 기업채에 대한 수요를 더욱 감소시켜 채권 스프레드를 확장하는 악순환을 불러오고 있다.

 

수치 출처 : 국가통계포털(KOSIS)
수치 출처 : 국가통계포털(KOSIS)

은행의 예금도 은행채와 함께 금리가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채권은 채무자와 채권자가 직접적으로 연결된 직접 금융이고, 예금-대출은 은행과 같은 금융기관을 거쳐 차입자와 예금자가 간접적으로 연결되는 간접 금융이다. 채권 시장의 불안정성에 은행 예금으로 투자처를 옮긴 자본은 채권에 비해 위험도가 훨씬 낮아진다. 채권 시장에 접근성이 어려웠던 개인 투자자들도 하락하는 주식 시장에서 은행 예금으로 자본금을 옮겨가며, 예치금과 기업 대출 규모는 함께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시중 은행 금리와 기준 금리가 상승하면서 채권 시장이 투자처로의 가치가 하락하는 악순환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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