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경] 레고랜드 사태 ② : 프로젝트 파이낸싱 & 지방정부 재정
[생경] 레고랜드 사태 ② : 프로젝트 파이낸싱 & 지방정부 재정
  • 황성진 기자
  • 승인 2022.11.24 16: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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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경’은 근래의 생생하지만 낯선 경제 시사를 이해하기 쉽게 풀어내는 코너입니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레고랜드 사태를 통해 한국의 프로젝트 파이낸싱(Project Financing, PF)의 한계가 드러나면서 PF 시장이 위축되고 있다. 이에 금융위원회는 금융감독원과 함께 10월 말까지 부동산 PF 현황을 파악하고 점검했다. 지난 7일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외신기자 간담회에서 “단기성과에만 집착해 시장 상황 변화에 대비한 선제적 리스크 관리를 소홀히 한 금융기관에 대해서는 필요한 조치를 취해 도덕적 해이를 막고, 향후 지나친 수익성 일변도(一邊倒) 영업에 따른 부작용을 예방하겠다”고 의견을 밝혔다.

 

PF는 기존의 담보대출(Corporate Financing, CF)과 달리 특정 주체의 현재 자산을 담보로 삼지 않고, 어떤 사업(Project)의 미래 수익과 사업 자산 전체를 담보로 이루어지는 대출이다. PF는 장기적이고 고정된 상환의 책임 주체가 따로 정해져 있지 않고, 해당 사업을 위해 설립된 특수목적법인(Special Purpose Company, SPC)이 상환의 주체가 된다.

 

PF를 통해 자금을 조달하면 사업주에게 여러 가지 이점이 발생한다. 첫째로, 사업주의 현금 유동성*에 따른 평가가 배제되고 오롯이 사업의 수익성만으로 평가되기 때문에 대출액이 CF보다 크다. CF는 채무자의 신용도를 높은 비중으로 반영하는 데 반해 PF는 사업의 가능성만을 가지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 현금 유동성: 자산을 손실 없이 현금으로 전환할 수 있는 정도. 현금 유동성이 높을수록 채권자가 재무적 어려움을 겪지 않고 상환할 가능성이 높다.

 

둘째로, 채무자와 보증인에게 원리금 상환의 무한책임을 지우는 위험에서 벗어나 상환 범위가 사업 내로 제한되어 사업주의 부담이 줄어든다. 다만, 국내 PF에서는 이러한 비소구 금융은 잘 없고 사업주가 위험의 일부를 부담하는 제한 소구 금융이 주가 된다.

 

셋째로, 채무가 제 기간 내에 상환되지 못하더라도 사업이 쉽게 철회되거나 폐기되지 않는다. PF는 사업 자산 대비 대출 규모가 훨씬 크기 때문에 사업 비용을 제외하고 남은 자산을 처분하는 것만으로는 원금 회수가 쉽지 않다. 또한, 지분으로 채무를 상환받으면 사업이 비전문적이고 다양한 의사 결정 주체로 지분이 분할되며 사업의 효율성이 하락한다. 따라서 단일 사업자의 이어지는 경영을 원하는 경우가 많아 채권자는 차환**을 진행하거나, 채권의 기간을 연장해주는 등의 조치를 마련한다.

** 차환: 기존의 채무를 상환하기 위해, 새로운 채무를 발행하는 일

 

이러한 PF의 특성을 살펴볼 때, PF는 사실상 대출의 개념보다는 투자의 개념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금융기관이 어떤 SPC에 PF를 승인한다는 것은 그 사업의 위험성을 금융기관이 오롯이 부담한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위험한 PF는 왜 존재하고, 실행되고 있는 것일까?

 

PF의 기본은 사업의 적합성과 수익성을 검토하여 적절한 가치를 평가하는 것이다. 정확한 가치 평가가 이루어진 PF는 투자기관에는 낮은 위험과 높은 수익을 안겨주고, 사업주에게는 자본의 한계로 실현하지 못한 사업을 가능하게 해준다. 그러나 한국의 PF는 그동안 부동산 개발 사업에만 주로 관여하며 쉽고 낙천적으로 이루어졌다. 부동산 시장의 호황으로 인해 주먹구구식 PF가 주류를 이루다, 전 세계적인 불황과 긴축의 시대를 맞이하며 벽에 부딪힌 것이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레고랜드 사태를 PF의 관점에서 살펴보자. 강원중도개발공사는 특수목적법인 아이원제일차를 통해 레고랜드 건설 자금을 조달했다. 이때, 강원중도개발공사의 PF 실행은 강원도가 채권에 지급보증을 서는 제한소구 방식으로 이뤄졌다. PF에 지방정부가 보증을 섰기 때문에 CF에 준하는 사업이었다. 그러나 채무 상환일이 다가오자 강원도는 돌연 지급보증을 거부했다. 현행법상 지방정부는 파산할 수 없기 때문에 보증을 거부했다고 해서 채권자는 지방정부의 자산을 압류하거나 강제 이행을 요구할 수 없다. 제한소구 금융인 줄 알았던 채권이 비소구 금융이 되고 회생절차에 들어서자 채권자들과 채권 시장은 혼란에 빠졌다.

 

강원도는 아이원제일차의 채무 2,050억을 지불할 능력이 충분했다. 지방정부는 중앙정부에 지방채를 발행해 자본을 지속해서 조달할 수 있을뿐더러, 1년 예산 8조 4,361억 원을 운용하는 강원도의 재정 수준을 고려할 때 부담이 될 수는 있어도 상환이 불가능한 금액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정치적인 이유로 지방정부의 부채 위기를 부각하는 일은 지난 2010년 성남시의 모라토리엄을 떠올리게 한다. 성남시와 강원도 모두 채무를 지불할 능력이 있다는 점은 동일했다. 2016년 9월 30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언론포럼연속기획 : 대선 예비주자에게 듣는다’에서 이재명 전 시장은 "그래서 좀 복잡한 과정이긴 하지만 좀 정치적 결단을 내렸습니다. 그걸 조용히 덮어놓고 빚을 갚을 수도 있지만, 주민들이 저항을 엄청나게 하지 않겠습니까? …(중략)… 모라토리엄. 법률에 맞지 않는 이야기를 한 거죠."와 같은 발언을 통해 사실상 성남시는 모라토리엄을 선언할 만큼의 재정적 위기에 놓이지 않았으며, 모라토리엄은 정치적 의도를 위해 선언됐음을 시인했다.

 

아울러 모라토리엄 선언 당시 국토해양부는 단기 상환 금액이 350억에 불과하고 나머지 금액은 알파돔시티 PF가 끝나면 정산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또한, 성남시 주장의 부채 5,200억 중 공공시설비는 2,300억이 아닌 최대 1,850억으로 추정되며, 초과수익 부담금 2,900억은 내년부터 단계적으로 사업비를 지불하기 때문에 우선순위가 높은 채무가 아니라고 밝혔다. 더불어 성남시 특별판교회계에 700억 원의 잔금이 있고, 알파돔시티 PF의 성남시 예상 수익금이 2,000억 원 정도로 추산되기 때문에 더더욱 재정에 어려움이 없다고 주장했다. 결과적으로 성남시는 상환 예정 계획보다 빠른 3년 6개월 만에 모든 부채를 상환하고 ‘모라토리엄 졸업’을 발표했다.

 

이번 강원도의 디폴트 선언은 성남시 모라토리엄 선언과 같은 정치적인 행위로 볼 수 있다. 강원도가 강원중도개발공사의 기업회생 신청을 발표하기 약 1달 전인 8월 26일, 강원도는 BNK에 4개월 치 선취 이자 38억을 지급하면서 23년 1월 29일까지 채권을 연장할 것을 구두로 합의했다. 그러나 강원도가 디폴트 및 기업회생 신청 계획을 하루 전날 BNK에 공유하고 9월 28일에 발표하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김진태 강원도지사는 이날의 브리핑에서 채권 연장 합의를 진행한 사실을 숨기고 “(강원도가) 고스란히 보증채무를 떠안을 위기에 있습니다. 그럼 이제 남는 것은 회생이냐 파산이냐 밖에 없습니다. 그래도 파산하는 것보다는 회생이 훨씬 나을 것 같다는 판단입니다.”라며 회생의 불가피성을 강조했다.

 

강원도의 기업회생 신청이 아직 법원에 접수되지 않았음에도 BNK는 기한이익상실***이 발생했다고 판단해 9월 29일 오후 2시에 채권의 만기일을 연장하지 않고 아이원제일차를 부도 처리했다. 강원도가 기업회생을 신청하기 전에 부도처리를 통해 최대한 부채를 회수하기 위한 선택이였다. 결국 강원도는 정치적 의도로 선언한 디폴트를 실제로 감당하게 됐다.

*** 기한이익상실: 채권자인 금융기관이 채무자에게 빌려준 자금에 대해 만기 전에 회수를 요구하는 일. 주로 신용도 변경, 파산 등 채권 위험이 증가했을 때 발생한다.

 

강원도는 계획을 발표했을 뿐 실제로 기업회생을 신청하지 않았기 때문에 기한이익상실이 발생하지 않았고, 이자 지급을 통해 상환일 연장 의사를 밝혔으므로 BNK에 과실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BNK는 이자 지급은 협상 시작의 조건일 뿐 연장의 조건이 아니며, 지방정부의 기업회생 계획 공식발표는 사실상의 기한이익상실 발생이라 할 수 있다고 반박했다.

 

김진태 강원도지사는 모라토리엄과 디폴트의 차이점을 간과했다. 성남시는 채무 지급유예를 선언했고, 강원도는 채무불이행을 선언했다. 모라토리엄도 지방 정부의 신뢰도 하락에 큰 영향을 주지만 비교적 규모가 작고, 실질적인 채무 상환이 정해진 기간 내에 이루어졌기 때문에 신용의 문제로 번지지는 않았다. 반면, 강원도는 실제로 디폴트를 선언하고 이행했기 때문에 부채 지급 유무를 넘어 신뢰의 문제까지 번지게 됐다.

 

정치적 목적을 위해 국가재정을 함부로 하는 일은 기존에도 종종 있었지만, 호황에 묻혀 금융권의 큰 위험으로 작용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국제 금융 시장이 불안한 오늘날에 이와 같은 재정적 위험은 위태하게 쌓여온 금융 체계를 무너트리는 시발점이 되어 금융권에 산재해있던 취약점을 드러내고 있다.

 

이번 레고랜드 사태의 일차적 책임은 AAA 신용도에 걸맞은 채무 이행을 보이지 않은 강원도에 있지만, 이차적 책임은 레고랜드 사업에 대한 정확한 가치 평가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PF를 진행한 금융기관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K-프로젝트 파이낸싱’에 대한 전반적인 재고를 통해, 국내 금융 공학의 총체적인 혁신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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